이 포스트에 사용된 사진들은 2014년 5월에 촬영된 사진들임을 알려드립니다
전날, 강릉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아기와 한 바탕 전쟁을 치른 베트남 새댁과 의정부 이불 아저씨는
이른 아침 민박집에서 벌떡 일어나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허겁지겁 얼굴에 마포질하고 양치질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민박집을 나선다
어제 아침 씩 ~ 웃으며 의정부 시장을 탈출할 때...
그때의 그 설레던 마음도 잠시,,,
아기가 깨기 전, 아침을 꾸역꾸역 정신없이 식도로 밀어 넣어야 했다
소주도 한 병 곁들여 허겁지겁 먹었으니 이제 남은 것 은 포만감과 졸음뿐....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언제 어디서 아기가 울고 토하고 싸고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건 여행이 아니라 전쟁이다
아기와의 전쟁,,,
여기서 얻은 의정부 이불 아저씨의 교훈!
70일 된 아기 데리고 여행 오면 아이고 ~ 아이고 ~ 곡소리 난다
그러니 아기가 엉금엉금 길 때까지는 절대 아이와 여행 다니면 안 된다!
하지만 아기가 엉금엉금 길 때 그때 아기 데리고 여행 한번 해 보라!
지금 아기는 한 자리에 눕혀 놓으면 그 자리만 고수하고 있지만
엉금엉금 기기 시작하면 밥 한 숟갈 뜨기 진짜 힘들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 먹다 남은 생선 대가리 생선까시
심지어 젓가락, 이쑤시개 등, 손에 집히는 대로 입으로 마구 집어넣는다
고로.... 지금이 그래도 편안할 때다
알간?
주문진 연곡 보리밥집은 오대산 연곡천 중하류에 자리 잡고 있는데
보리밥집 마당에 들어서면 이 부근에 바다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넓은 분지가 있다
그리고 분지 주변으로는 농가주택들이 하나, 둘씩 듬성듬성 들어서 있다
이 연곡천을 중심으로 왼쪽은 자그마한 영진항이 있고 오른쪽 소나무 숲은 연곡 해수욕장이다
연곡해수욕장은 개장한 지 40년 정도 되어 간다는데
강릉 경포해수욕장의 명성에 밀려서인지 아직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백사장의 길이는 2~3Km 정도 되려나?
해송림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백사장 해변에 들어서면
오대산 연곡천이라는 민물과 연곡해수욕장이라는 바닷물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연곡천은 오대산 소금강과 진고개 방향에서 시작되어 이곳 연곡해수욕장 사이로 흘러든다
이곳은 연어와 은어, 그리고 연곡 보리밥집을 지나 중상류로 올라가면
산천어가 많이 사는 하천으로 부근엔 오대산 소금강 계곡이 자리하고 있다
이 연곡천을 중심으로 왼쪽은 연곡 해수욕장이고 오른쪽은 주문진 영진항이다
그리고 저 앞에 보이는 교량은 영진교라고 하는데
강릉에서 주문진으로 들어가는 옛날 국도이다
이 교량은 연곡해수욕장과 주문진을 연결하는 영진교이다
다리 아래로는 오대산에서 시작된 연곡천이 연곡해수욕장으로 흘러들고
다리 끝 지점, 소나무숲이 울창한 곳이 연곡 해수욕장이다
이제 이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대산 소금강 방향으로 약 5Km 정도만 가면
보리밥 하나만 전문으로 하는 연곡 보리밥집이다
이곳에서 주문진항까지는 약 4Km, 강릉 시내까지는 15Km 정도이고
오대산 소금강 쪽으로 방향을 틀어 연곡천을 따라 약 5~6Km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연곡 보리밥집이다
주문진항과 오대산 소금강으로 갈려지는 삼거리에서 소금강 방향으로 약 5Km 정도 달려오니
2차선 도로변 약 200m 지점에 울긋불긋 꽃들이 만발한 농가주택 하나가 보였다
사실 이날 나는 이곳 보리밥집에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주소도 알고 있었고 전화번호도 알고 있었지만 전화 한 통 없이 불쑥 찾아갔다
전화번호와 주소는 내 블로그를 방문한 어떤 분이 알려 주었기 때문에
수첩에 적어 놓았다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봐야지...
이렇게 결심을 해 놓고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다섯 해가 지났나?
여하튼 연곡에서 보리밥집 하시는 분, 소식을 듣고 5년 만에 찾아가 보는 것 같다
보리밥집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꽃밭 사이를 지나 대청마루 쪽으로 한 발 두 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이 분들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내가 이분들을 강원도 삼척 첩첩산골에서 마지막 모습을 본 지도 어언 7~8년 세월이 지난 것 같다
그리고 포천으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이사 왔다는데
시장 바닥에서 정신없이 장사만 하면서 살다 보니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설렘 반, 두근거림 반으로 집 앞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사람의 기척조차 없다
큰 소리로 한 번 불러볼까.....?
그리고는 여보세요? 계세요?
하려는데 목소리가 입안에서만 맴맴 돌지 어찌 된 일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꽃밭 앞에 있는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독들
그리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꽃밭들 하며
내가 7~8년 전에 강원도 삼척 첩첩산골 동활리 보리밥집에서 보았던 그 정갈한 솜씨....
바로 그 소박하고 정갈한 솜씨 그대로였다
그런데 왜? 사람의 기척조차 없지?
혹시 외출한 거 아닌가?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진다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부엌에서 문을 열고 나온다
바로 그 아낙이었다
삼척 첩첩산 고리골짝에서 보리밥을 정성스럽게 만들던 그 아낙!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하니 아직 나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화 한 통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온 사람, 설마 이불장수 왕서방이겠나?
이런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요,,, 삼척 동활리에서 보리밥집을 하셨죠?
아낙은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서도 아직 아리송한 표정만 짓는다
그때... 이불장수 왕서방... 모... 르... 세... 요....?
그제야 아낙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럼 그때 그 이불장수?
네?
아휴 ~ 이거 얼마만이세요?
그러더니 그제야 아저씨를 부른다
아저씨가 방문을 열고 나오시는 거 보니 어떻게 반가운지,,,
아낙은 아저씨와 같이 차나 한 잔 하시면서 앉아 계시라고 하고는 보리밥을 지으신다고 한다
사실 이날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예약에 한해서만 보리밥을 한다고 한다
그것도 12시에서 2시까지만,,,
그런데 12시도 안 된 오전 시간이었는데 아낙이 팔 걷어붙이고 부엌으로 들어갔으니
이날 나는 브이브이 브이 아이 피 대접을 받은 것이다
잠시 후 보리밥이 나오고 이날 같이 동행한 의정부 이불 아저씨와 베트남 새댁이 자리에 앉았다
베트남 새댁은 주문진항에서 대게와 곁들이찬으로 나온 호박, 계란찜, 찰떡 이런 것만 먹었다
회와 같은 날고기를 못 먹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리밥에 나물밥을 먹고자 같이 합석한 것이다
한데 베트남 새댁, 산나물은 참 잘도 먹는다
고추장은 매워서 못 먹지만 된장은 그래도 잘 먹는 편이다
이곳에서도 베트남 새댁은 고추장을 생략하고 보리밥을 맨으로 쓱쓱 비벼 된장국과 같이 먹었다
아기는 베트남에서 온 친정어머니가 차 안에서 돌봐 주고 있으니
그래도 여유롭게 밥을 먹었다
삼척시 통리역에서 신리고개를 넘어 삼척 가곡면 풍곡리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동활계곡이 있다
첩첩산중 동활계곡은 골이 깊은 협곡들이 약 10Km에 걸쳐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바로 거기서 보리밥집을 하던 분들이 어느 날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그 후로부터 7~8년 세월이 지났나?
삼척 동활리 보리밥집에서 7~8년 전 보리밥을 먹어보고
이날은 이곳 강릉 연곡에서 보리밥상을 또 한 번 받아 보니 감회가 새록새록하다
이 나무 밥상은 이들 부부가 삼척 동활리 골짜기에서 보리밥집 할 때 가지고 있던 것이었는데
포천으로 가져갔다가 5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올 때 다시 모셔온 것이라 한다
보리밥집 아저씨께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더니
5년 하고도 며칠 째라고 했는데 며칠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보리밥에는 된장국과 여러 가지 나물, 채소 등, 반찬이 나오는데
화학향료와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 한 그릇이라도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다
요즘 도시의 거의 모든 식당에서는 너무나 많은 향료와 조미료를 쓰기 때문에
이제 도시인들은 맛의 감각을 잃어버리기 십상인데
이곳에서는 채소나 산나물 특유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옛날 그때 그 삼척 골짜기의 그 보리밥은 아니지만
똑같은 솜씨, 똑같은 사람의 정성이 깃든 보리밥인지라
예전보다 내공이 더 심오하게 들어간 듯했다
보리밥은 손님이 전화 예약을 하면 그때부터 밥을 짓기 시작한다는데
주문한 분량만 밥을 짓고 나머지 누룽지 밥은 식사 후 후식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날은 보리가 하나도 섞여있지 않았다
오랜만에 온 손님이라고 급하게 해서 그런가?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는데 하나씩 맛을 보라고 고추 세 개 올려놓은 안 주인의 배려이건만
베트남 새댁은 매운 것을 못 먹으니 나물밥과 된장국만 먹었고 내가 한 개를 더 먹었다
이날이 5월 16일 목요일 오전 시간이었는데 보리밥은 미리 전화 예약을 해야 되고
밥을 만드는 시간은 12시에서 2시까지라고 한다
메뉴는 오로지 보리밥 하나
가격은 1인분 8,000원
그리고 일요일은 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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