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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풍경, 07~17년 이야기

숲속에 사는 어느 괴인의 시장 나들이(영주, 봉화 5일장 상설시장 장날)

by 비단왕 2024. 6. 20.

이 포스트에 사용된 사진들은 2009년 3월에 촬영된 사진들임을 알려 드립니다 

 

영주 공설시장 - 2007년 6월 촬영

 

단양에서 중앙고속도를 타고 국내서 가장 길다는 죽령터널(6km)을 지나면 영주시 풍기읍이다 

세계에서 가장 매력 없고 낭만 없는 고속도로는 아마 경부고속도로와 경인 고속도로?

8차선 10차선 고속도로가 서울서 인천까지,

또는 서울서 부산까지 8열 종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는 것만 생각하면 숨이 캭캭 ~

여하튼 최악의 길이다

중앙 고속도로는 수도권의 고속도로에 비하면 한산한 것이 그래도 운치가 있는 고속도로지만

오늘은 소백산 죽령 옛길을 넘고 싶었다

일천 오백 년 전 고구려의 단양 사람들이 봇짐하나 달랑 메고

신라인 풍기읍으로 80리 소백산 죽령을 걸어 넘듯이,,,

 

영주 공설시장 - 2007년 6월 촬영

 

단양에서 소백산 죽령을 넘어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영주 공설 시장에 도착했다 

어쩌다 한 번씩 가는 영주 공설시장이지만 이 시장에 오면 여기서 밥 먹고 갔었다 

시장서 대충 이불을 팔아먹고 욕쟁이 할머니가 하는 선술집으로 갔으나 

이날은 웬일인지 문이 잠겨 있었다 

옆에 식당으로 가서 주인 아지매한테 물었다 

 

"대구식당 할매 오늘 장시 안 하나 봐요?"

약간 곱슬머리 파마에 붉은 루즈를 칠하고 빨강 장미꽃 그림의 원피스를 입은 아지매 

나름대로 멋을 부린 50대 주모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는가 싶더니

 

"아! 그 욕쟁이 할매 말씀하는 거 아잉교?"

나는 예!..라고 대답하는 대신 고개만 끄덕였더니

그 할매 울진 친척 집에 갔다가 올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잠시 기다리다 다시 대구식당으로 갔더니

울진에 갔던 욕쟁이 할매가 방금 돌아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영주 공설시장 - 2007년 6월 촬영

 

나는 대구 식당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소주 한 병과 굴비 튀김을 시켰다 

이곳에 온 김에 오늘은 이 시장 어디서 노숙을 하기로 작정했다 

소주 한 병하고 굴비 튀김 다섯 마리 만 원이었다 

첫 잔을 기분 좋게 비우고 능청스럽게 할매에게 말했다 

 

"시장 사람들이 할매더라 욕쟁이 할매라고 그러는데요?" 

그 소리를 들은 할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말한다 

 

"어떤 씨방탱이가 그런 소리를 해?"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가며 

"큭큭~~~ 꺼억~~~ 시장 사람들이 다 그러던데요 뭘 ~~" 

 

"조까고 대찜 바르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씨방탱이들!" 

"그런데 씨방탱이는 알겠는데요 대찜을 바르다니... 대찜이 뭐죠?"

 

"그건 몰라도 된다마! 내 축구 보고 있을 테이, 술 떨지만 말하라마!"

그러면서 티브이를 켜고 월드컵 축구 선수들 누구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욕쟁이 할매 답지 않게 제법 해설을 잘도 한다

 

"박지서이 까라, 이천수 까라, 안정화이 까라... 골 넣는 솜씨가 귀신 솜씨레이,,,"  

"할매! 티브이 끄고 음악 틀어 놓고 노래나 듣자고요

현철의 이름표를 붙여줘 ,, 아니면 송개관의 세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눈물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태진아의 옥경이 같은 것이나,,,"

 

"아! 그 끈끈한 문디들! 그래도 그눔아들 가락은 좋태이 ,, 근디 혼자 뭔 궁상이고?" 

"뭔 궁상입네까? 할머니 있는데... 같이 부릅시다"

 

"니캉 내캉 같이 부르자꼬? 난 싫다마! 오늘은 먼 길 갔다 오느라 피곤하다마!"

"할매요! 그래도 꼭 참고 한번 부르자고요"

 

"젊은 문디가 지금 뭐라카노?  에빌 닮았나?  에밀 닮았나? 와이래 쌌노?

젊은 문디가 다 늙어 빠진 할매 하고 노래를 부르면 기분 나나?"

 

"이 판에 젊은이 늙은이 따지게 생겼소? 그냥 닥치는 대로 놀아야지!"

"조까고 대찜 바르는 소리 하고 있네!"

 

이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던 중, 봉화에서 최영해 선생님이 연락받고 도착, 

저녁시간까지 젓가락 장단으로 기분 좋게 노래 부르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주 공설시장 - 2007년 6월 촬영

 

욕쟁이 할매 선술집 앞의 이불 가게

사실 욕쟁이 할매가 욕은 잘 하지만 인심은 무척 후한 할매다 

그 시장에서 인심이 가장 후하여 안주도 먹다 떨어지면 한 주먹씩 덥석 덥석 그냥 집어 준다 

"어떤 씨방탱이들이 그런 소리를 해?"  

이런 욕만 하지 않으면 예수님보다 부처님보다 훨씬 더 후덕한 할매다 

 

술을 마셔서 이제 나는 그만 시장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간다 했더니 

최영해 선생님께서 봉화 일소암으로 가자고 한다 

대리 운전을 하는 단골 대리 아줌마 기사를 불렀다나? 뭐 했다나? 

그래서 그날 저녁은 대리운전 아줌마 기사와 함께 최영해 선생님 산채로 갔다 

 

봉화 물야면 산자락, 어느 괴인의 산채

 

매일 같이 되풀이되는 내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람쥐 찻바퀴돌 듯 매일같이 돌아다니는 도시의 시장에서 벗어나 

시골 시장으로 바람같이 달려가곤 했다 

 

매일같이 시작되는 똑같은 도시 시장에서 똑같은 사람들의 무류하고 따분한 표정들 

그 경직된 일상에서 벗어나 내 삶을 다시 한번 신선하게 하고 싶은 열망이 솟을 때면 

나는 주저 없이 충주, 제천, 단양, 풍기, 영주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봉화 물야면 산자락의 숲에서 살고 있는 적음 스님네 집으로 갔다 

그 산채는 일소암(一笑庵)이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암자라기보다는 어느 괴인이 은밀하게 숨어 사는 산채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싶다 

시골 농가를 수리해서 살고 있으니,,,

그 괴인은 15년째 그 숲 속 산채에서 두문불출하며 살고 있는데,

옛날에는 자신의 20년 산문생활을 마무리하는 일대기를 써서

6만 부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봉화 물야면 산자락에 있는 어느 괴인의 산채

 

이곳은 번지수가 있지만 그야말로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숲 속 농가였고 

겨울 문턱으로 접어드는 계절인지라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옷깃을 파고들었다

다음날 아침,

차가운 지하수물로 세수를 하고, 괴인과 함께 일용할 양식을 사러

20리 밖에 있는 봉화 상설시장으로 길을 나섰다

 

괴인의 산채 아래에있는 하황산 시내버스 승강장

 

괴인의 산채에서 영주나 봉화에 나가려면 여기 하황산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곳을 지나는 시내버스는 하루 네 번 밖에 없다 

영주에서 물야로 가는 시내버스가 아침 져녁으로 두 번, 

봉화에서 물야로 가는 군내버스가 아침저녁으로 두 번, 

이렇게 버스는 네 번 다니지만 어떤 때는 세 차례 정도 다닐 때도 있다 

 

봉화 물야면 수식리 삼거리

 

괴인의 산채인 하황산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조금 내려가면 이렇게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40리 정도 가면 영주 시내, 왼쪽으로 20분 정도 가면 봉화시내가 나온다 

이제 나와 괴인이 탄 봉화 군내버스는 봉화 상설시장으로 가고 있는데 

버스 승객들 모두 합쳐봐야 괴인과 나, 그리고 마을 할배 둘, 이렇게 총 네 사람이 타고 있었다 

 

봉화읍으로 들어가는 입구 해저리

 

아침부터 봉화 군내버스를 타고 들판길과 산길을 번갈아 달리며

봉화읍 해저리를 니나고 있을 때는 어느덧 군내 버스 승객들은 7~8명으로 늘어났다 

봉화읍 해저리는 봉화 시내에서 영주시 방향으로 가장 끝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왜 왜 해저(海底)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항시 궁금했다

나중에 알아본 결과, 옛날 이곳이 바다 밑이었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봉화읍(奉化邑) 해저리(海底里)는 하천보다 낮은 바다였었다는 의미로

처음에는 "바래미"란 이름이 붙었다가 나중에 해저리(海底里)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주 오랜 옛날에 바다 밑에 있던 지각이 변동을 일으켜 내륙 깊숙한 이곳까지

야금야금 침투해 들어왔단 이야기란 말인가? 

여하튼 이곳 사람들 이야기로는 지금으로부터 60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의 논과 웅덩이에서 실제로 조개껍데기가 나왔다고 한다

 

봉화역

 

해저리를 지나 봉화 시내 입구에 내리니 봉화역이 보였다 

그런데 역 주변의 구멍가게나 다방이나 상가들은 허름하기만 한데

승객들도 그리 많지 않은 시골 간이역을 왜 이렇게 크게 지었을까?

봉화역 맞은편에 있는 봉화군청이 얼마 전 군청 청사를 거대하게 지어 놓았으니

철도청도 이에 질세라 역사 건물을 이렇게 크게 지었을까?

여하튼 봉화군에서 가장 큰 건물은 석포 제련소 다음으로 봉화군청 청사이고,

이 부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는 역은 봉화 역사인 것 같다 

 

봉화역 앞 해성 다방

 

봉화역 고려슈퍼

 

봉화 5일장 상설시장 장날

 

봉화역에서 조금 걷다 보니 봉화 시장이 보였는데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장이 서고 있었다 

봉화 5일장 상설시장 장날은 끝자리가 2일, 7일이다 

봉화 5일장 상설시장 장날은 버스터미널 건너편에 있다 

산골 읍내장 치고는 규모가 좀 큰 편이기는 하지만,

물건을 사려고 장구경 나온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떤 때는 장구경을 나온 사람들의 숫자보다 상인들의 숫자가 더 많을 때도 있다

 

봉화 5일장 상설시장 장날

 

봉화 상설시장도 재래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투명한 아케이ㄷ로 시장 지붕을 씌워 놓았지만

시장 경기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이곳 봉화는 밭농사와 논농사 그리고 소나 돼지를 기르고 있는 농가들이 많기 때문에

추수 때나 되어야 사람들이 돈을 좀 쓰러 나온다고 한다 

 

봉화 5일장 상설시장 장날

 

봉화 5일장 상설시장 장날에는 

텃밭에서 손수 지은 농작물을 내다 파는 할매들이 시장 안에 길게 늘어서 있다

옥수수, 파, 고추, 상추, 배추, 무, 오이, 아욱, 당근 등을 판다

 

봉화 장날

 

이곳은 봉화 상설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마늘과 양파, 마늘, 버섯등을 파는 장인데 상인들이 많이 몰려 있다 

 

봉화 장날

 

이곳은 봉화 상설시장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어물전이다

갈치, 꽁치, 자반고등어, 영덕게, 동해 골뱅이, 가오리, 물오징어, 멍게, 꼬막 등을 팔고 있다

이곳에서 나와 괴인은 물오징어와 갈치, 동해 골뱅이, 도토리묵, 계란 등을

사 가지고 검정 비닐봉지에 담았다 

봉투에 담아 가지고 가다가 기왕 시장에 나온 김에 막걸리나 마시고 가려고 

괴인의 단골 술집, 포장마차로 향했다 

 

봉화 장날, 상설시장 맨 끝에 자리 잡은 시골 포장마차 

여기는 장날만 되면 봉화 영감님들의 총집합 장소다

오징어 두루치기 삼천 원, 계란말이 삼천 원, 조기구이 삼천 원, 꽁치구이 삼천 원

웬만한 안주는 거의 삼천 원씩 팔고 있는데 싸다고 해서 양이 적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의 잘 맛집이라 불리는 식당들 보다도 맛도 좋고 양 또한 푸짐하다

하지만 어떤 영감님들은 집에서 안주감을 가지고 와서 소주나 막걸리만 달라는 영감님들도 있다

그러고는 막걸리 몇 잔에 취흥이 달아오르면 주저 없이 노래도 한 곡조 부른다 

이날도 이곳 봉화시장 포장집에는 네댓 명의 영감님들이 장구경을 나왔다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막걸리가 한 통, 두통쯤 비워졌을 무렵, 취흥이 달아오른 영감님들은

젓가락을 두두리며 노래 한판 걸판지게 부르고 있었다   

 

천두웅산 ~ 바악달재는 ~ 울고 넘는 우리리님아 ~ 로 시작을 해서

두마안가 앙 ~ 푸른 물에 ~ 노 젓는 배엣 사아공 ~   이런 노래도 부르고

그러다가 취기가 오르면 인생이란 무엇인지 ~ 처엉춘은 즐거워 ~

피었다가 시들으면 다시 못 필 내에 청춘

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 ~

이이 밤이 새기 전에 춤을 춥시다 ~

부기 부우 키타부기이 ~ 부기 부기 기타부기 ~

아이 조쿠 ~ 조크 좋아 ~ 주모오 ~ 여기 조기 한 사라 더 ~

 

이렇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영감님들이 시끌벅적 부산을 떨어도

포장마차 주모는 언짢은 내색 한 번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하고 옆자리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괴인이 영감님들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젓가락을 두두리며 한 곡조 쫙 ~ 뽑고 있는 것이 아닌가?

 

괴인이 자주 즐겨 부르는 십팔번지는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와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인데

그날도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란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해당화 피고 지는 ~ 섬마으을에 ~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새엥님 ~ 

열아홉 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

사랑한 그으 이름은 총각 서언 새엥니임 ~

서울 엘랑 가지를 마이오 ~ 가아지를 마이오 ~

 

짠 짜라 짜라라라 지앙 ~ 

이렇게 괴인이 추임새까지 곁들여가며 걸판지게 노래를 부르자

포장집 영감들이 박수를 치면서 나 보고도 한 번 불러 보라고 한다

나는 좀 난감했지만 어쩔 것이여?

충청도 시장에서 경상도 봉화 포장집으로 왔으면 포장집 법도를 따라야지

여하튼 그날 나도 나훈아의 노래를 불렀는데 제목이 뭐더라? 

갑자기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가사를 조금 요상하게 개조를 해서 한 곡조 불렀다

 

물어 ~ 물어~ 이가 물어 ~

뼈룩도 꼬옵 살이 껴 ~

차가운 밤바람만 휘몰아치는데

뼈룩과 이가 무울어  ~

저 달 보구 물어본다 ~

님 계신 고오옷을 ~

물어 물어 찾아와도 ~

뼈룩만 물고 이있네 ~

 

노래가 끝나자 봉화 영감님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봉화 포장집을 진동하고 있었고

다시 젓가락을 두드려 가며 시작되는 노랫소리

잠시 후, 또 내 차례가 돌아왔다

 

이거 이러다가 술판이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데, 괴인은 마냥 죽치고 앉아 일어설 생각을 않는다.

나는 이만 술판을 접어야 되겠다 ,, 싶은 생각에 아주 획기적인 노래를 부르기로 작정,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장한 각오로 아주 요상한 노래 한곡 불렀다

 

그 노래가 무엇이냐 하면 옛날 군대에서 아침 점호가

끝나면 한 번씩 꼭 불렀던 노래인데 우리 중대 중대가였다

그때 당시 한창 유행하던 팝송이었는데 노래 가사는 누가 개조를 했는지 모르지만,

누구든지 한번 들었다 하면 뒤로 홀라당 나 자빠질 것이다

 

"자! 지금부터 노래 시작 ,, 반동은 천당에서 지옥으로,,,."

이런 구호를 외친 다음 나는 그 자리서 벌떡 일어나

영감님들에 쫓겨날 각오로 그 노래를 우렁차게 불렀다

 

원싱이 궁둥이는 빨게 ~

빠게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기똥차게 길어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 보다 높은 것은 꽃

꽃 보다 높은 것은 몰라 ~

몰라 몰라 몰라 몰라 몰라 ~

몰라 몰라 몰라 몰라 몰라 ~

 

여기까지 불렀을 때는 그래도 봉화 영감님들이 젓가락을 마구잡이로 치면서

갖가지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잘한다 ~ 아이 조쿠 ~ 조쿠 조아 ~

그런데 문제는 다음 대목이었다

 

봉화 할매 길을 가다 오줌이 마려

길가에 앉아서 오줌을 누니

옆에 있던 개구리가 팔딱 뛰며 하는 말

오뉴월에 소나기는 왜 이리 뜨거!

 

에라 ~ 닝기리 ~ 쓰버 조로 키펄 러닝 ~

에라 ~ 닝기리 ~ 에누리 조로 키플 러닝 ~

에라 닝기리 쓰버 ~ 에라 ~ 닝기리 쓰버 ~

에라 닝기리 쓰버 조로 키펄 러닝 ~

 

이렇게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한참 열을 올리며 열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포장마차 안에서는 동요가 일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영감님들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변하기 시작했다

 

"뭐냐? 치워라! 그것도 노래냐? 판 깨려고 작정했냐?"

옆에 있던 괴인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포장집 여기저기서는 야유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그냥 그 자리서 걸음아 ~ 날 살려라 ~ 하면서 허겁지겁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그날 나는 하마터면 봉화 영감님들한테 잡혀서 긴 담뱃대 빨쭈리로 대그빡 몇 대 얻어맞을 뻔했다

 

잠시 후...

봉화 시장 저 끝에서 시침 뚝 떼고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괴인이 막걸리 값을 지불하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양손에는 좀 전에 샀던 어물하고 계란 등이 들려 있었는데,

허겁지겁 나오다가 바지가 뜯겼는지 엉덩이 바지는 반쯤 타게져있었다  

 

폰카로 찍은 괴인의 뒷모습,,, 봉화장날에,,,

들고 가는 검은 비닐봉지에는 그날 봉화장에서 산 물오징어 4마리와 홍합

그리고 소주 댓 병,소백산 막걸리, 등이 들어있다

그런데 포장집에서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어떻게 저리 바지를 다 빵꾸내 가지고 나오신다?

 

"포장집에서 고랑탱이 안 먹었어요?"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물어보는 나에게 그 특유의 경운기 돌아가는 소리로

탈탈탈 ~ 웃으면서 한 마디 한다

 

"길산 씨 노래 잘 만 부르더만, 와 도망가노?"

그러면서 또 한 번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로 탈탈탈 ~ 웃어 대는데,

저 괴인의 웃음소리는 봉화와 안동, 영주에서도 알아주는 웃음소리다

시장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한 번 웃었다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 괴인이라는 것을한 방에 알아차릴 정도다

행색은 저래도 왕년에 자신의 20년 산문생활을 마무리하는 일대기를 써서

6만 부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었고,

어느 스포츠 신문에 정규적으로 연재가 되었었던 베스트셀러의작가이기도 하다   

 

봉화 장날, 장을 봐 가지고 산 자락 산채로 가기 위해 군내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있는 괴인의 뒷모습

그런데 저 엉덩이는 또 뭣꼬?

봉화 시장 포장집에서 막걸리 마시다 공연히 나 때문에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펑크 나 부렸눼 

수년동안을 적음은 경북 봉화에 내려가서 살고 있다.

청량사에 그가 가장 부담 없이 의지 하는 지현스님이 있기 때문이다

적음 스님은 지금 봉화 물야면 민가를 사서 살고 있다.

술도 먹고 시도 쓰고 소설도 쓰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

지현 스님(봉화 청량사 주지)은 그가 아무리 귀찮게 해도 늘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다.

"집에 있다가도 무슨 날이다 싶으면 택시를 타고 오지요

그리고는 택시기사하고 절에 올라와서는 택시비 내놓으라 하고요"

라며 웃으면서 말한다

그것이 적음스님 방식의 인정이다.

지현스님의 말로는 근자 안동에서 "적음 시화전"이 있었다고 한다.

전시 내용도 좋았고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현스님은 "그쪽에서는 기인들의 교주가 되었지요"라고 한다.

이 말끝에 지현스님과 나는 허허, 히히 하고 웃었다.

 

어떤 사람들은 적음을 일러 우리 시대의 마지막 기인이라 하고, 혹은 땡초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인은 몰라도 땡초라고 하는 말은 잘 안 맞는 것 같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시(詩)에 대한 열정이

그로 하여금 결코 땡초라는 별명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시인이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의 기인이다.

기인이라고 하면 선화를 그리고 시를 쓰는 저 유명한 고 중광 스님이 있었고

소설가 이외수 선생과 이미 작고 하신 시인 천상병 선생이 있었다.

여기에 적음을 아는 사람들은 이분들의 반열에 적음을 포함시켜 4대 기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령으로는 그분들에 비하여 후배 이기는 하지만 천진무구한 심성이라든지

술을 좋아하고 걸림 없이 사는 모습 등은 결코 선배 격인 위의 세분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들리는 말로 적음은 이 세분의 기인들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는 내가 보는 적음은 비승비속의 야승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를 땡초니 또는 기인이니 하고 부르기에는

아무래도 마음이 너무나 여리고 또한 어질다.

무엇보다 시인으로서 그의 열정을 높이 사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야승, 고삐 풀린 한 마리 들짐승 같은 사람, 이 표현이 아무래도 그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럼 지금부터 광양 텃밭 도서관 관장님이 봉화 일소암을 다녀간 후기를

여기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아래 포스팅에 사용된 사진들은 광양 텃밭 도서관 관장님 각시님이 촬영했고요 

글은 도서관 관장님이 2014년 11월에 직접 작성했습니다 

 

밥때를 넹기고 낭깨 배지도 고푸고 해서 몬춤 밥이나 묵고 지달릴란다 헝깨 공설시장에 욕쟁이 할매가 허는 대구식당으로 가먼 밥 주껑깨 묵고 있으래서 물어 물어 찾아 갔더마는 밥은 안 폰다네!

"이불장시 왕서방이 여그 가먼 밥 준다던디요?" "왕서방이 어떤 놈이여?"

"맨날 여그 와서 술 묵고 밥 묵고 헌다던디, 여그가 욕쟁이 할매집은 맛다요?" "나가 욕은 좀 헝깨 맞는디, 술 퍼 묵는 놈들이 때 되도 안 강깨 밥 해 주는 거제 밥만은 안 폴아... 나가 밥허는디 갤차 주껑깨 거그가서 묵어!"

허름헌 장터밥집서 그래도 맛난 생선찌개에 저녁 잘 묵고 지달리고 있는디, "거그가 어디요?" 허고 묻는 전화가 오는그마!

날고 긴다는 장꾼이 장터를 못 찾고 헤매고 있으니... 이서야 허까 울어야 허까...

암튼 에럽개 만내 갖고 오밤중에 일소암이라는 디로 모시것다는디, 술 묵는 놈을 끌고 뭔 암자로 간다는거여?

암튼 여그까지 와서 부닥칬씅깨 끌고 가는대로 끌리 가야제 뭐~!

질도 어신 산질을 구비구비 몇 구비나 돌고 도는지를 모르것는디, 암튼 거그에는 참말로 벨난 사람이 있더랑깨...

 

사람 대 놓코 이런 말 허먼 안 될 말이제마는 기냥 대그빡 밀고 상깨 스님이라고 부르기는 허고, 열 너댓 살때부터 출가해서 수도생활을 했당깨 학실허니 스님은 스님인디, 중간에 뭔 일이 있었덩가는 몰라도 시방은 통간에 중 내금새도 안나는 요상헌 중이더랑깨...

주식이 술이고 안주는 녹차 한 잔..

일소암이라고 문패 달아 논 암자 아닌 암자에는 부처님 그림자도 안 배기고...

밤낮도, 손이 있던 말던, 허고 자분 소리 다 허고 잇고 자부먼 지붕이 떨썩떨썩허개 잇어 재끼는 모냥이 통간에 감을 못 잡것더랑깨...

 

술 묵는 놈이 누먼 뭣 허고 따지고 자시고 헐 거시 뭐 있당가? 기냥 술이나 잘 묵으먼 되제!

한때는 寂音 최영해라는 이름으로 잘나가는 책을 맹글아서 돈도 제복 몬치 봤다는 작가고, 시집도 낸 시인이고, 땡중이기도 헌 기인이랑 만낸 술자리가 밤이 깊어 가는디...

담달에는 시랑 산문이랑 잠뽕이 된 책을 맹글고 인사동서 잔치도 헌다고 오라는디, 인사동이 어디 옆 동낸가?

 

얼큰허니 취해 갖고는 뜽금없이 기똥찬 바둑알집이 있는디, 바둑 한 판 뛰자고 들고 나오는 바둑판을 보니 기도 안 차네...

알집이 그리 존 거먼 그래도 기본적으로 발몽뗑이라도 달린 놈을 들고 나와도 뭣 허껀디, 이것도 짝이 떨어진 놈을 들고 나오니... "나는 도저히 이런 바둑판으로는 못 놀 것소! 바둑 알집 체멘도 좀 생각해야제..."

 

들고 간 매실주를 반치나 축내고 따땃허니 불 때 놨다는 방으로 들어 오니 서라벌대학 문창과를 나왔다는 문인 내금새가 온 방에 곰팡내랑 범벅이 되 갖고 은근허니 나네!

나만 시상 꺼꿀로 산 줄 알았더마는 여그는 한갑이 다 되 갖고도 참말로 시상 나이를 꺼꿀로 묵음서 애기 맹키로 사는 사람이 있네...

너무애비타불 관심보살..... ^^

 

자정을 넹기고 1시가 됭깨 나는 좀 자 놔야 것다고 들어 왔는디, 둘이 붙어서 밤새도록 상다리 뚜들아 감서 노래허더마는 새복 4시나 됭깨 부섴에서 뭘 맹그는지 딸그락기리 싸서 먼디서 손이 왔다고 도야지라도 한 마리 잡아 내 놀랑갑다 했더마는 아직에 인나서 물어 봉깨 놀다가 배가 꼴짝해서 나멘 낄이 묵니라 그랬다는그마!

눈 뜨고 안방으로 들어 강깨 웃목에는 볼쑤로 쐬줏병 끌러서 세워 놓코 한 순배 돌리고 있는 판이던디, 지리산 녹차라고 낄이서 안주 삼아 자시는그마!

녹차 한 잔 묵고 아직밥을 챙기는디, 여그저그서 맹글아다 준다고 찬은 푸짐허그마... 언잿적 건지는 몰라도...!

대충 챙기 묵고 밤새 이약허고 자랑헌 동내 고샅을 한본 돌아 볼라고 나오는디...

 

말리 갓에는 기왓장 한 장이 글을 보둠고 벗투고 서 있고,

 

방문 앞 쭉담 욱에는 묵직헌 목도가 뭣헌다고 도가지 욱에 벗투고 앙것는디, 제복 나이가 묵은 거 겉더랑깨...

 

누가 맹글아다 놨다는 솟대 실은 배 하나가 먼 질 떠날 채비를 허고 있는디, 언제나 물이 들어 야가 나서 질란지... 헐 일 없기는 젙에 있는 지팽이도 마찬가지네!

 

현관문 욱에 달아 논 이 놈 땜시 절인줄 알았던 건디, 실상은 절이라고 헐 거는 암 것도 없더마! 

 

옛날 촌집 하나를 대충 고치 갖고 사는 집이라 벨난 것도 없는디, 목도랑 솟대랑 욕심이 쪼까니 나더마는 해도 여그가 더 어울리는 놈들이다 시퍼서 눈도장만 찍고 말았그마!

 

쥔만큼이나 태평스런 놈이 써리를 맞아 감서도 잇고 섰는 걸 봉깨 이 동내 들어 오먼 다 비스무리해 지는 갑더랑깨...

 

집 앞에 빈 집이 있어 때작기리고 가 봉깨 간밤에 적음스님이 귀헌 홍시라고 내다 주던 똘감낭구가 감만 호빡 이고 서 있네!

 

낭구 밑에는 떨어진 감들이 늘비해서 홍신가 싶어서 주 봉깨 쌩감이 이리 흘렀그마!

 

쥔 떠난 빈 집에는 시방이라도 쥔만 돌아오먼 쇠등거리에 올라 앙거서 논으로 밭으로 달리 갈 채비를 마친 연장들이 무심헌 시월만 삭후고 있네!

 

한창 때는 신나개 나락 모감지를 뚜두라 딱던 놈인디, 그 때가 언잰디 아직도 전디고 있었네 이~!

장정들이 둘이 서서 발로 볼바 감서 신나개 나락타작허는 거 보고 있쓰먼 꼭 춤 추는 거 겉앴는디...

이 놈을 옆에 사는 쥔네가 써 묵을 디 있쓰먼 가 가랬씅깨 담에 이불장시가 안 실고 오먼 야 땜시라도 한 행보 더 해야 헐랑가 모르것네!

 

몬춤 들어 간 각시가 아직도 반질반질헌 솥단지를 채리 보고 눈이 빤짝빤짝해 지는디, 언재던지 이 솥 안 쓰개 되먼 기벨해 주라고 쥔아지매헌티 신신당부를 허고 있그마!

먼디서 집이까지 놀로 오시는 분들헌티 이걸로 밥 해 주고 잡다고...

 

봉화장 가서 막거리 한 잔 헌다고 챙기 인나는 적음스님이랑, 기왕 자리 잡은 겅깨 하리 더 파이쳐 뿔고 장태롱이나 허고 들어 오것다는 이불장시 왕서방 차는 집 앞에다가 벗타 놓코 우리 차로 봉화장으로 나갔는디, 얼매나 걸치고 댕깄는지 누비바지가 다라져 갖고 힉허니 속캐가 삐져 나온 걸 보고 사진 하나 박것다고 이불장시가 따라 가고... 그 꼬라지를 박아 보것다고 촌놈이 따라 가고...

 

우스바 죽것담서 각시가 따라 가는디... 암튼 사람 잇개 맹글아 주는 거 보다 더 큰 보시도 없는 거제 뭐~!

 

장마당에 들어 서자마자 장은 채리 보도 안 허고 단골집이라고 들어서는디, 몬춤 자리 잡고 앙것쓰라고 해 놓코 장귀경을 허것다고 돌아 보는디...

 

너무 일러서 긍가 아직 사람들이 많치는 않은디, 봉화장이 그리 큰 장은 아니더마!

꼬치 장아찌 맹그아 묵것다고 풋꼬치 좀 사고 시상이 좋아 농깨 산중꼬랑에도 싱싱허니 물 좋은 괴기들이 드글드글헌디, 적음스님이 좋아헌다 쌍깨 물오징어 몇 마리 사 드맀더마는 이걸로 안주 맹글아 갖고 한 잔 더 허고 하리 더 슀다 가라고 해 싼디...

<우리는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고 만해스님이 이약 안 헙디여?

존 술자리서 술 좋아허는 놈이 털고 인나는 속은 오죽 헐랍디여... 시상이 암만 더러바도 스님 웃음 소리만 안 쫄아든다먼 살만헌 시상잉깨 다시 봐 지것지다 뭐...

 

................會者定離 去者必反..................

요상헌 스님을 따라 댕깅깨 나도 요상해 질라 허는디, 더 요상해 지기 전에 단나야제... ^^ 

 

- 이상, 광양 텃밭 도서관 관장님의 2014년 7월에 작성한 봉화 일소암 방문 후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