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트에 사용된 사진들은 2007년 11월에 촬영된 사진들임을 알려드립니다
제천 시장에서 일을 마치고 짐차를 몰고 태백 황지 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황지 시장도 파장 무렵인지라 일찌감치 숙소를 정해놓고
태백역 부근에서 저녁식사를 한 다음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오전 태백 황지 시장에서 일을 마치고 삼척 중앙시장으로 가려고
삼척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데 너무 오랜만에 이곳에 들려서 그런지
그날따라 시장 앞에 솟아있는 연화산이 더욱 우뚝해 보였다
연화산은 태백시장 바로 앞에 괴물처럼 우뚝 솟아 있는 산인데 그 높이가 1,170m에 달하는 산이다.
등산할 때 1,170m 산이라면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황지 시장 바로 앞에 1,170m짜리 산이 떡 버팅기고 솟아 있으면
그 체감높이는 바닷가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높아 보인다
짐차를 몰고 연화산의 험한 S코스 산길을 15분 정도 어지럽게 달려왔더니 통리역이 보였다
통리역은 국내에서 추전역 다음으로 두 번째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이다
통리역 앞에서 신리 고개로 넘어가는 건널목을 건너 삼척 방향으로 조금 올라갔더니
통리협곡 앞에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삼척은 42Km, 도계는 10Km 남았다고 친절하고도 자상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나는 여기서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삼척 시장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신리 고개를 넘어 동활계곡에 있는 보리밥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신리재 동활계곡 보리밥집은 40대 초반의 부부가 하고 있는 곳인데
첩첩산 골짜기에 콕 처박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내가 태백 황지 시장과 동해, 삼척 시장을 들락거리며 가끔 한 번씩 들려서 머물다 오던 곳이기도 하다
삼척 신리재 동활계곡의 문패도 간판도 없는 보리밥집에 가려면 저 통리협곡의 신리재를 넘어야 한다.
저기 산등성이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골짜기는 미인폭포라고 하는 곳이다
미인 폭포는 해발 900m 정도의 신리고개 정상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리재 정상에서 S, Z 코스의 험한 산길을 타고 약 20리 정도를 내려가면
삼척시 가곡면 동활계곡에 있는 보리밥집이 나온다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성이 차지 않아 다시 몇 방을 더 찍어 봤으나
줌 기능이 없는 폰 카메라였기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협곡사이로 희미하게 폭포의 윤곽은 잡힌 것이 좀 전의 사진보다는 낳은 것 같다
이곳이 바로 국내에서 골이 가장 깊다는 그 악명높은 통리 협곡이다
길이는 도계읍 방향으로 약 10Km정도로 뻗어있으며
가장 깊은 골은 여의도 63빌딩 보다 훨씬 깊은 300m에 달한다고 한다
좀 전에 말했던 신리재 동활계곡 보리밥집에 가려면 저 미인폭포를 지나서
자동차로 20여 분 정도를 더 내려가야 한다
미인 폭포 있는곳에서 약 15분 정도 자동차로 내려오면 신리 너와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삼척 가곡면 풍곡리 방향으로 약 10분 정도만 더 내려가다 보면 보리밥집이 있는 동활계곡이다
삼척 도계읍 너와마을에서 풍곡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다 보면 이와 같이
골이 깊고 불가사의한 협곡들이 약 십오 리 정도에 걸쳐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 모양은 마치 중국의 양쯔강이나 황하강 중상류의
깎아지른 듯한 협곡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는 곳이다
신리 너와마을에서 약 10분 정도 협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이처럼 골이 깊은 동활계곡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문패도 간판도 없는 신리고개 보리밥집이다
내가 태백 황지시장에서 동해, 삼척시장으로 넘나들 때 잠시 들려 이불 한 장 주고
보리밥과 차도 한 잔씩 얻어먹으면서 신가던 곳이었는데, 이날 와보니 집 문이 잠겨 있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원래 이 집의 주인한테 물어보았더니, 한 달 전에 이곳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 집의 원래 주인은 바로 이 옆에 살고 있는데, 이 부부들에게 살아 보라고 집을 내주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이곳에서 약 10년 간 살다가 갑자기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동두천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어찌나 허탈한지 나는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허무감에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그 보리밥집만 쳐다보다가 비어있는 집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불차를 세워놓은 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면 두 부부들이 했었던 보리밥집 담장이 보이고
그 주위를 살펴보면 우뚝 솟은 고봉들로 막혀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아침에는 해가 늦게 떠오르고 초저녁에는 일찌감치 해가 넘어가는 음지에 자리 잡고 있다
저런 장소는 초저녁부터 산 그림자가 어둡게 덮쳐오기 때문에 고요하기는 하지만
햇볕을 볼 수있는 시간이 짧다.
그런 이유 때문에 자칫하면 사람의 성품도 적극적인 양기보다는 소극적인 음기로 기울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 살았던 부부들은 워낙 표정들이 밝고 환해서
그런 음하고 습한 지리적인 여건들은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듯했다
이곳 동활리 보리밥집은 네댓 가구가 올망졸망 모여 사는 곳이고
겨울이 오면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다.
지대가 높고 또 개울가라서 더욱 춥다
쌀은 없어도 견딜 수 있지만 장작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부엌 옆 통나무 창고에는 두 부부가 겨울을 보내려고
참나무, 콜크 나무 등을 패서 장작을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놓곤 했다
그리고 이 동활리 보리밥집 부근에는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스님이 하나 있는데
그 스님은 이 보다 더 깊숙한 덕풍계곡 숲 속에 산채를 지어놓고 20년째 살고 있다
내가 삼척, 태백시장에 넘나들 때면 나는 꼭 이곳 보리밥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동해 바닷길을 따라 묵호, 강릉 쪽으로 넘어간 일이 종종 있었다.
어쩌다가 저녁시간에 들리면 이 부근에 사는 스님과 보리밥을 먹고
그 스님의 숲속 산채에서 하룻밤을 신세 지기도 했었다
보리밥집 부부는 10년 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동활리 마을로 이사 와서
보리밥도 팔고 농사도 지으면서 살았다.
이곳에 들리는 손님들이라고 해봐야 산림청 직원들과 면사무소 직원들,
그리고 길을 지나면서 가끔 들리는 외지 사람들이 전부였다
신리고개 동활리 보리밥집은 60년 전에 지어진 집이라서 기둥의 색깔은 검은 빛깔을 띄고 있는데
그래도 넓직한 앞마당에는 서너 그루의 큰 감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들 부부는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첩첩산중 신리고개에 보리밥집을 차리고 10년 동안 살았는데
보리밥집 모양새는 1920년대 강원도 산골마을 특유의 너와집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동활리 바로 옆 마을은 지금 현재도 너와집이 군데군데 산재해 있다
그 마을 이름은 전국에서도 너와 마을로 유명한 신리 마을이다
보리밥 한 그릇에 오천 원씩 했는데 나물과 채소 등 반찬이 10여 가지가 나온다
자신들이 텃밭에 직접 농사를 지은 채소와 산에서 캐온 산 나물이 주 반찬이다
화학 향료와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 한 그릇이라도 정성스럽게 해 준다
요즘 도시의 웬만한 식당에서는 너무나 많은 향료와 조미료를 쓰기 때문에
이제 도시인들은 맛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채소나 산나물 고유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요즈음 도회지의 식당가에서는 아이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하여
인스턴스 설탕을 듬뿍 치고, 미원, 기름, 맛나, 다시다, 각종 향 색소 양념 등으로 포장해
이제 도회지의 사람들은 혀의 감각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본래의 맛을 숨기고 조미료나 설탕, 각종 향, 색소 양념 등을 듬뿍 쳐서 위장하는 것...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혀 속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대뜸 이런 이야기부터 한다
"느이 마누라는 화장도 안 하고 사냐?"
물론 이렇게 반문을 던져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식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 말에는 나도 적당히 둘러댈 말을 찾지 못하고는 있지만,
지금 현재 우리의 혀는 맛의 감각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가 언젠가 원덕에서 태백으로 가는 도중 이 부근을 지날 때 폭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이 보리밥집 부근에 살고 있는 스님네서 이틀을 보내며 보리밥집을 드나들게 되었다
하루는 폭설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을 때 그 스님네 산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곳 보리밥집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무쇠로 된 난로에서는 장작이 활활 타고 있었고,
우리는 보리밥을 먹고 난 다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난로 옆 마루에 있는 오래된 고가구에는 시집도 몇 권 꽂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빛바랜 시집인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다음 쓰라린 상처를 가다듬으며 오랫동안 혼자 살았던 도종환 시인
한때는 한반도의 많은 남녀노소들을 눈물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도종환 시인
읽는 순간 솜털이 솟는듯한 감성의 시어들
접시꽃 당신과 첩첩산중 보리밥집 당신?
왠지 묘한 뉘앙스가 풍기기에 옆에 있는 스님에게 한번 넌지시 물어봤다
"요즘 도종환 시인 어떻게 산대요?"
"아마도 새장가들었다고 하지"
스님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큰둥하게 한 마디 하고는 국화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니, 이 땅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얼마나 많이 낭송했던 시어들이었는데
아무래도 도종환 시인한테 내가 옛날에 샀던 책값 물어 달라고 해야 하나?
나는 속으로 이렇게 구시렁구시렁 거리며 짤막하게 한 마디 했다
"내 책값 돌려줘!"
그때 그 스님도 차를 마시다 말고 또 뚱하게 한 마디 한다
"사발꽃 당신한테 돌려받어라"
사발꽃 당신?
다 같은 그릇인데 사발꽃 당신하고당신 하고 접시꽃 당신하고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는 그 스님의 시큰둥한 짧은 한마디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스님이 조금 농담 섞인 어조로 장난스럽게 한 마디 한다
"여자는 끝없이 설명하려 들고 남자는 끝없이 얻으려고 하지
그것이 여자와 남자가 지니고 가야 할 피치 못할 운명 아닌가?"
"에이 ~ 스님! 무슨 말씀을... 내가 전에 어느 잠언집에서 본 내용인데요
남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쁜 날이 딱 두 번 온다고 하던데요"
그때 옆에 있는 사람들이 호기심 있게 듣고 있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그 기쁜 날 두 번 온다는 날이 어떤 날인데요?"
나는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조금 뜸 들이고 있는데
귀를 쫑긋 세우고 빤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 내뱉고 말았다
"남자들이 살아가면서 기쁜 날 두 번 찾아오는 날이 무엇이냐 하면요
하루는 여자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고 또 하루는,,, 하루는,,,
그 여자 장례식에 참석하는 날이라고 하던데요"
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사람들이 킥킥 거리며 웃고 있을 때
스님이 또 시큰둥하게 한 마디 한다
"또 푼수 떨고 있네... 이 소리를 사발꽃 당신이 들었다면 너는 초상 치러야 한다"
그렇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이야기는 푼수 떠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살아 평생 아내에게 옷 한 벌 못 해주고
아내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다고 하는데
그때 옥수수밭 옆에 아내를 묻고 돌아오던 심정... 워찌 말로 다 할 수 있었으리...
하지만 지난날 그리움의 말들은, 특히 시간의 물결에 휩쓸려 가다 보면
웬만큼 단단한 그리움이라도, 점차로 퇴색되어 빛이 바래고 마는 것이 사실인가 보다
여기 가곡면 동활리 벽지마을에서 농사와 보리밥집을 하면서 살았던 부부는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여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주인 잃은 보리밥집은 시간이 막 가다가 어느 한 곳에 정지되어 있는 듯했다
내가 이곳을 지날 때 폭설이 내려 어쩔 수 없이
이 부근에 살고 있는 스님과 함께 한 이틀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저 보리밥집에서 며칠 밥을 먹어보니
도시의 시장에서 길들여졌던 균형 잃은 혀가 제 감각을 찾아오는 듯했다
이렇게 우리는 도시의 생활을 하면서
그 도시의 흐름에 묻어있는 소음 속에 우리들 자신을 내 던지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 울리는 소리, 서로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소리,
하루 종일 티브이라는 먹통상자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소리에 길들여져 둔감해져 있었던, 눈과 귀가
이곳에서 한 이틀을 보내고 나니 다시 제 기능을 찾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 저 보리밥집은 주인을 잃은 채 그냥 그 자리서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들 부부는 이곳에 있었다고 이웃집 사시는 분이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사이에 벌써 이렇게 귀곡산장 같은 스산한 집으로 변하고 말았다
집이란 것은 주인이 돌보지 않고 며칠만 비워 놓아도
이렇게 먼지가 푹푹 쌓이고 폐가처럼 되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수시로 돌봐주어야 집도 숨을 쉬면서 화사하게 살아나는 것인데
이런 산골 벽지마을에 한 달 이상을 비워 두었으니 오죽하랴
내가 이곳에 마지막으로 들렸을 때가 이 때로부터 5개월 정도 되었으니,
내가 가고 난 뒤 3~4개월 만에 갑작스레 이사를 간 모양이다.
이웃에 사는 할매한테 어디로 이사 갔냐고까지는 물어보았지만 왜 이사 갔냐고는 물어보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10년 동안 살았던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해야지
그 부부들이 이곳에 살고 있을 때는 이 보리밥집 마당이 온통 꽃밭이었다
빨강꽃, 파란 꽃, 노랑꽃, 하얀 꽃... 그야말로 아사궁전과 같은 화사한 꽃들이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온 마당 가득 울긋불긋 수놓고 있었다
그런데 겨울에 폭설이라도 내리게 되면 꼼짝없이 한몇 주일은 방에 꼭 들어앉아 있어야 한다
이곳은 겨울에 눈이 한 번 왔다 하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기 때문에 눈 속을 파헤쳐 길을 내고는
굴속 같은 눈길을 두더지처럼 헤집고 다녀야 한다
길고 긴 겨울밤!
폭설이라도 내려 교통이 두절되면 이 부부들은 좁은 방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겨울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주고받았으리
눈 속에 하얗게 파묻힌 겨울밤의 긴긴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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