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 명호면 관창리라고 하는 곳에서 이불 주문이 왔었다
천안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쉬지 않고 달려도 4시간은 걸린다
일부러 가기에는 버거운 거리였기 때문에 충주, 제천 시장 가는 날에 날을 잡아서 갔다
오전 10시쯤 출발하여 오후 2시경, 봉화 읍내 도착
급커브 급경사 길을 따라 30여 분을 달려 청량산으로 갔을 때
명호면이라는 자그마한 산골 마을이 추억처럼 명호강 주변에 펼쳐져 있었고
청량한 명호강을 따라 관창리로 올라가는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어느 강을 가 봐도 강 상류는 아직까지 보석처럼 빛난다
하지만 강 중류와 하류로 갈수록 도시의 온갖 구멍으로부터 쏟아지는 오염수로 인하여
우리나라 모든 강들은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것 같다
시들고 병들어가는 강들의 핼쑥한 얼굴은 우리들 현재의 자화상일 수밖에 없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등 하류를 한번 보시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많은 강들이 맑고 푸른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하류의 강물들이 검게 썩어가고 있어도
아직 산간벽지를 휘돌아가는 상류의 강물들은 청정하게 빛을 발한다
보석처럼 맑게 빛나는 명호강 줄기를 따라 나는 오지 중의 오지, 산골 벽지 마을로 올라간다
700m 높은 지대에 위채해 있는 마을
경운기 한 대 겨우 드나들 수 있는 험준한 벼랑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S코스로 돌다가 Z코스로 꺾다가 8 자 코스로 회전하면서
이불 차도 숨이 가쁜지 으악~~ 으악~~ 연신 비명을 질러댄다
명호강에서 약 20여 분정도 올라갔을 때 산 정상에는 7~8 가구 정도가 모여 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다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는지 도저히 믿기기 힘들 정도였다
언젠가 사진에서 봤던 만년설에 둘러싸인 에베레스트 산기슭의 마을이 생각났다
전기도 없고, 티브이도 없고, 오디오도 없고, 신문도 없고, 잡지책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전기밥솥도, 세탁기도, 전자레인지도, 가스레인지도 없는.
그저 저 끝없이 펼쳐진 산봉우리들 밖에 없는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시멘트 포장까지 되어 있고, 전기라도 들어오고
자동차를 비롯하여 모든 전자제품을 갖추고 살고 있으니
그래도 우리나라가 축복받은 좋은 나라이긴 한가보다
하지만 이곳 700 고지 정상에 잠시 서 있자니 얼마나 추운지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이 불어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야만 했다
듣자니 봉화군 명호면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다는 화천, 양구, 철원보다 더 춥다고 한다
청량산(淸凉山)
맑을 청자에 차가울 량자, 그리고 청량산을 휘돌아가는 차가운 강, 명호강
그 이름에 걸맞게 이곳은 모두 얼어붙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일구던 옹색한 화전들은 텅 비어 황량했으며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조그만 마을 풍경들은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그림처럼 수려한 명호강 줄기, 살아 숨을 쉬는 듯한 산들
햇볕에 반짝이는 장관스런 기암절벽,,,
나는 이런 아름다운 절경들을 음미하고 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달픈 삶의 현장이다
오지마을의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흔히 호기심을 느끼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오지의 삶이란 진절머리 나는 악전고투의 나날들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오지마을에 산다는 것은 그곳이 좋아라기 보다도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그곳에 눌러앉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곳 경상북도 북부, 강원도 남부의 모든 화전들의 사정이 대부분 그렇다
청량산 청량사와 마주하고 있는 봉화 명호면 관창리
700m 고지 정상의 마을, 명호면 관창리 7~8 가구의 사람들
이곳 사람들은 새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연세 지긋한 노인들은 거의 없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고 약초를 재배하며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중 사과 과수원 규모가 꽤 큰 편이다
1년에 약 1억 원 정도의 사과를 생산을 한다나?
700m 고지의 고산지 사과이니 사과가 열릴 때쯤이면 제일 먼저 팔려 나간다는 것이다
시내버스 크기만 한 냉장, 냉동창고도 있고 집들도 양옥식으로 새로 지어서 모두 깨끗해 보였다
문제는 아이들 학교 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7 가구가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 주고
또 도로가 무너지면 명호면에서 도로 보수도 해주고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즉시로 제설작업까지 해 준다니
7~8 가구 사는 곳에 비하면 그래도 혜택이 많이 가는 동네인 것은 분명하다
내가 이런 곳으로 이불을 팔러 온 것은 이불장사 15년 만에 첨 있는 일이다
이 동네에 사시는 분들 중 내 블로그에 가끔 방문하시는 분이
봉화 일소암 오는 길에 이불 싣고 올라오라 해서 간 것이었다
일 년 농사 끝내서 돈들을 좀 가지고 있으니 비싸고 좋은 이불을 싣고 오라는 귀띔까지 해 주었다
700m 고지 정상 오지마을에서 이불장이 펼쳐지니 이 뭔 일이랑가?
물건 사러 온 사람들이라고 해 봐야 과수원 하시는 분하고 동네 몇몇 분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눈을 반짝이며 구경하고 있었다
마침 김장도 끝내고 앞마당엔 김장 김치하고 돼지고기와 소주 댓 병이 있었다
돼지를 한 마리 정도 잡았는지 커다란 다라로 한 다라인데
냉장고에 넣어놓지 않고 그냥 마당에 그대로 놓아둔 채로 구워서 소주들을 마시고 있었다
탑차 안에 있던 이불들을 이것저것 꺼내어 보여주고는 되도록 싼 이불로 권장을 했더니
과수원 하는 아지매가 소주 한잔 마시면서 하는 말씀이
"우리가 시골 사람이라고 예, 너무 우습게 보지 마이소"
라고 말 하면서 그 비싼 천연염색 이불로 두 장
극세사 침대 커바 한 개, 그리고 천염염색 침대 패드 두 장 가지고 오라 한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된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런 이불 몇 채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 뎁쇼"
"아재예, 장사할 줄 모르는 것 아잉교, 이 아재 차~암 장사 몬한다"
"이런 물건은 예단 같은 거 할 때나 이사 갈 때 큰맘 먹고사는 이불이구만유"
"아재예, 우리가 이런 곳에서 사니까 우습게 보이는교? 가고 오라면 퍼뜩 가고 오이소"
내놓으라 하는 시내 장바닥에서 날고뛰는 이불장시 왕서방이
일개 산골 아지매한테 완전히 자존심이 망가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자! 이것이 무엇이냐? 이불이여! 이불! 어따 쓰느냐? 천 이백 원 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시는 분! 하나 갖다 덮어봐! 즉빵 나!
자! 살려면 사고 말려면 사!"
이렇게 기세 좋게 떠들며 이불이 팔아먹던 기백은 다 어디로 가고
지금 일개 봉화군, 봉화에서도 첩첩산중 명호면,
명호중에서도 앞도 첩첩 뒤도 첩첩인, 산중의 산중인 산골 아지매한테
이 눔의 머저리 이불장사가 절절 매고 있는 중이다
"네! 여기 말씀하신 대로 몽땅 대령했구먼요"
"우리 침대에다 후딱 덮어놓고 이리 와서 소주 한잔하고 가이소!
이불 장수가 그리 물커덩~ 해서 우예 장사 하겠노?"
"눼! 그저 성은이 망극할 뿐이구만유"
"장사는 마, 그리 하는 게 아닌 기라예"
"눼! 알겠구먼요"
"이래유~ 저래유~ 하지 마소예, 아재가 그리 나온다 카이 장사가 더 물컹~ 해 지는 것 이잉교?"
"알았구먼요"
이런 웃지 못할 광경을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이 킬킬 거리며 자기네들끼리 한바탕 웃는다
그리고는 고지대 사과를 커라란 봉지로 한 보따리 넣어주며
소주 한잔 마시고 하룻밤 자고 가라는데 같이 동행했던 사람도 있고 해서
곧바로 그 길로 그 산 꼭대기 첩첩산중 마을을 아찔하게 돌아 내려와 봉화 일소암으로 향했다
봉화 명호면 관창리의 고지대 마을에서 일정을 마치고 다시 수정처럼 맑은 명호강을 따라
봉화읍을 지나 물야면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어두워 가고 있었다
봉화 명호면과 물야면
같은 봉화군인데도 어찌 서로 모양새가 생판 다르게 생겼을까?
기암괴석의 고봉들에 둘러싸인 봉화 명호면은 꺼마득한 첩첩산중 마을인데
봉화 물야면은 안동평야 들판처럼 이리도 밋밋할까?
불과 30~40분 정도의 거리인데 사람 사는 지형이나 모양새가 이리도 색다르다니,,,
우리나라 땅덩이는 좁지만 세계 어느 나라의 대륙보다도 더 넓고 더 깊다는 것이 실감났다
어스름 저녁 무렵, 봉화 물야면의 일소암에 도착하니
어느 외계인들이 사는 먼 세상을 여행하다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소암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니 적음선생님께서
그 특유의 발동기 돌아가는 듯한 웃음으로 탈탈탈 웃으며 반갑게 맞이하였고
명호면 이야기와 연화심 보살이 사는 간창리 이야기를 잠시 하다가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적음 선생님께서 저리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은 이번에 첨 보는 일이었다
다음날 서울에서 시집 출판식 행사 때문에 그 좋아하는 술도 마다하고 참하게 주무시고 있다
그 행사는 적음선생님이 공들여 지은 일 년 농사나 마찬가지였기에,,,
같이 동행한 동호와 나는 일소암 건넌방에서 소주 몇 잔에 만두 몇 개 먹고 그만 거꾸러졌다
잠 속에서도 오늘 내가 다녔던 명호면 산골마을의 험하고 좁은 길들이 환영처럼 보였다
700m 고지에 위치해 있는 오지 중의 오지마을
경운기 한 대 겨우 드나들 수 있는 험준한 시멘트 포장 좁은 벼랑길
텅 비어 있는 옹색한 마을 사람들의 황량한 화전들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운 강 마을 풍경들
앞마당에서 줄넘기 놀이하던 산골 아이들의 모습들
"우리가 시골 산다고 우습게 보이는교?"
하면서 익살스럽게 말하던 과수원집 젊은 아지매의 모습
그 모든 것들이 환영처럼 다가왔다가 아스라이 멀어져 가곤 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덜거덕 덜거덕 거리는 소리에 살짝 눈이 떠진 것일까?
덜거덕 덜거덕 거리는 소리는 챙그랑 챙그랑 그릇 부딧치는 소리로 변했다가는
쿵쿵! 우당탕 쿵 광! 거리며 일소암 지붕을 걷는 소리로 변하곤 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지붕 위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위로 올라가 누구인가 알아보려고 해도
에이 ~ 일어나기 귀찮아진다
그런데 다시 눈을 감으면 소리가 또 난다
덜거덕 덜거덕, 챙그랑 챙그랑, 쿵쿵 우당탕 쿵 광!
도둑 눔일까?
설마 도둑눔이 아무것도 없는 빈 산채에 들어와서 요란을 떨지는 안겠지
그럼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일소암 지붕 위에서 어느 놈들이 술 한잔 퍼 마시고 있는 것일까?
잠결에 귀를 쫑긋 세워보면
긴 턱수염에 걸쭉한 아랫마을 도공이 지붕 위에서 술 한잔 마시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처럼 씨도 때도 없이 탈탈탈... 웃고 다니는 적음선생님 같기도 하고
술 한잔 마시면 넋두리 푸념을 잘도 하는 아랫마을 박수무당 같기도 하고
호시탐탐 무림지존의 자리를 노리는 광양의 나촌 같기도 하고
경월소주 8병을 퍼마시고 "에이 ~ 군대 족같네!" 하면서 투덜거리는 발가락 같기도 하고
춘향 아씨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이히히히히~ 웃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닐 거다
저 놈은 일소암을 기웃거리며 호시탐탐 방안을 엿보는 도둑 눔일 것이다
그런데 일소암에는 골동품 냉장고 하나와, 골통품 세탁기 하나,
그리고 골통품 전기밥솥과, 골통품 전축 하나밖에 없어 가져갈만한 물건이 없다
아무래도 생각을 달리 해 봐야겠다
지금 일소암 주방 쪽에서는 한참 덜거덕 덜거덕, 챙그랑 챙그랑, 우당탕 쿵 광!
한참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노숙자가 몰래 침입, 라면 끓여 먹고 있는 소리일까?
아니다
저놈은 적음선생님이 황해도에서 데리고 온 세기의 도적, 장길산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겁이 안 난다
놈도 일소암 주방 지붕 위에 올라와서 쓰잘데 없이 나를 엿보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들어오라고 그래도 도적 장길산은 나를 모를 텐데,,,
그런데도 놈은 또박또박 한 마디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오늘아침, 눈이나 비가 온다면 대구식당으로 한 잔 하러 오소!"
아마도 건방지고 입이 걸쭉한 영주 공설시장 대구식당 욕쟁이 할멈이었었나 보다
동호는 아직도 코를 드르렁 ~ 골며 잠에 빠져 있었고 날은 밝아오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떠 보니 소리는 더욱더 가까운 곳에서 확실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덜그럭 덜거덕, 쨍그랑 쨍그랑, 우당탕 쿵탕, 쿵쿵!
주방에서 도대체 누가 뭣을 하기에 이리 소란스러울까? 싶어 문을 열고 가보니 글세,,,
적음 선생님이 아침 일찍부터 이렇게 라면을 끓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라면 하나 끓이는데 뭔 황소 한 마리 때려잡는 것처럼 요란스러웠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니 또 한 바당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처럼 웃는다
우화화화~ 탈탈탈 ~ 웃어젖히며 같이 라면을 먹자고 한다
나도 어제 아침부터 밤늦도록 싸돌아 다녔더니 시장기가 밀려와
라면 한 개를 더 넣고 끓이자고 했다
그러고는 둘이 같이 딸그락 딸그락, 우당탕 쿵탕, 후루룩후루룩, 와작와작, 쩝쩝....
이런 난리통에도 동호는 건넌방에서 코를 드르렁~~ 골아가며 자고 있었고
적음선생님과 나는 온갖 조선 팔도의 요란이란 요란은 다 떨어가며 단숨에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영주 버스터미널로 가려고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이곳이 산간 마을이다 보니 온도가 낮아서 그런지 자동차 앞 유리에도 성애가 살찌기 내려있었다
스멀스멀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수식리의 샛강을 따라 터미널로 가면서
적음선생님한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제부터는 나 강길산이가 일소암 주지할 테니까 그리 알으셔유이"
"우홧홧홧~ 탈탈탈 ~ 그럼 취임식을 해야지"
"개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아예 이자리서 인수 인계식 하자구요이"
"화홧홧홧 ~ 주지해! 주지해! 오늘부터 강길산을 주지로 임명하노라. 화홧홧홧 ~ "
"그럼 서울 올라가신 길에 쭈욱 ~ 서울서 계시더라고요이.
이곳 일소암은 이 시간 이후부터 나 강길산이가 접수한 거유?"
"알았써! 알았써! 내 이제부터 서울에서 있을 테니 주지해!"
"그럼 그렇게 알고 오늘부터 강길산이가 일소암 주지로 취임했다고
전국의 동지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려 뿔거유"
"와 홧홧홧홧 ~ 일소암 주지 강길산,,, 와홧홧홧홧 ~ 탈탈탈"
그러고는 영주 버스 터미널에서 아침 첫차를 태워 보내고는 다시 일소암으로 돌아오니
드르렁 ~ 코를 골아가며 뒤집어져 있던 동호가 일어나 주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동호와 나는 일소암 주지 취임 기념으로 영주 대구식당 욕쟁이 할멈한테 가서 술이나 마실까?
아니면 봉화 석포를 지나 석개재를 넘어 삼척 가곡면 풍곡리 보리밥집에 가서 보리밥 먹고 오까?
조금 장고를 한 끝에 삼척군 풍곡리에 있는 보리밥집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차를 몰아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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