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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풍경, 07~17년 이야기

함백산 만항재와 잊혀진 40리 고개길, 고한 매봉산 금대봉 두문동재(싸리재)

by 비단왕 2024. 6. 23.

정선군 고한 시장에서 태백시로 가는 매봉산 두문동재 옛길

 

사북, 고한 시장을 빠져나와 함백산 만항재를 넘을까 하다가 매봉산 두문동재 터널로 향했다 

평상시 같으면 그 터널을 통과했을 것이지만

이날은 터널 옆으로 나 있는 두문동재 옛길로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

 

매봉산 두문동재 터널이 개통되기 전,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려면 필히 이곳을 지나야 했었다.

두문동재는 싸리재라고도 불려지며 고개의 높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함백산 만항재와

거의 비슷한 높이의 1천3m에 육박한다

두문동재 터널이 개통된 후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갯길이 되고 말았지만

예전에는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를 이어주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두문동 시내버스 승강장 - 정선군 고한읍 두문동 (2008년 10월 촬영)

 

이곳은 사북, 고한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두문동이란 마을로서

예전에는 태백으로 넘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하지만 2001년, 터널이 개통되면서 이 두문동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 갔다 

저 앞에 보이는 버스 승강장은 길고 지리한 두문동재가 시작되는 구간인데 

이제 더 이상 버스는 다니지 않는다 

 

매봉산 두문동재 터널이 개통되기 전, 고한에서 태백으로 가려면 필히 이곳을 지나야 했다 

두문동재는 싸리재라고도 불렸으며 고개의 높이는 국내에서 가장 높다는 함백산 만항재와  

거의 비슷한 높이의 1천3백 m에 육박한다 

2001년 두문동재 터널이 개통된 후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갯길이 되고 말았지만

그전에는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를 이어주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잊혀진 고갯길 두문동재 - 고한 두문동에서 태백방향으로 넘는 길목 (2008년 10월 촬영)

 

두문동재(싸리재) 옛길은 길이 비좁고 급경사와 급커브로 되어 있어

눈이 조금만 내려도 넘기 힘든 아주 험한 지형의 고갯길이다.

함백산 만항재와 함께 자동차로 넘을 수 있는 국내의 고갯길 중에서는 가장 높다

 

내가 이 고개를 가장 많이 넘나들던 때는 90년대 중반이었지 않았나 싶다 

당시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갈 때는 꼭 이 고갯길을 넘나들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나의 백토마는 힘들어 죽겠다고 으악 ~으악 ~ 연신 비명을 질러대곤 했었다

그럴 정도로 이 구간은 굴곡과 경사가 심한 데다가 구간 또한 약 18Km,, 지루할 정도로 길다

 

두문동재(싸리재) 정상 부근(2008년 10월 촬영)

 

이 40여 리나 되는 고갯길은 넘는 동안 민가 하나 없는 고갯길이다  

그리고 이 도로 끝에 보이는 컨테이너는 40리 두문동재 고갯길을 넘는 동안

유일하게 하나 있는 휴게소인데 저 휴게소도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 

 

문이 닫혀 있는 두문동재 컨테이너 휴게소

 

매봉산 컨테이너 휴게소는 예전에 이 길을 넘나들던 사람들의 유일한 휴식처였다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던 사람들의 만남의 광장 같은 역할까지 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컨테이너 휴게소에서 바라본 두문동재 정상

 

두문동재 정상

 

함백산 만항재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높다는 매봉산 금대봉 두문동재(싸리재)

고한 두문동에서 두문동재 정상을 지나면 행정구역은 태백시로 바뀐다.

 

정상에서 태백방향을 바라보며 촬영한 사진

 

매봉산 두문동재 정상에서 태백 방향 골짜기로는 싸리나무가 많았다 

바로 이 고개 아래쪽으로는 국내서 가장 높다는 추전역이 자리 잡고 있는데 

추전이란 이름도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두문동재서 내려다 본 태백의 첩첩한 산봉우리들

 

매봉산 두문동재 정상에서 내려다본 태백의 산봉우리들은 유장함을 뛰어넘어 처연하기까지 하다 

저 끝에 우뚝 솟은 봉우리 아래로는 태백시가 자리 잡고 있는데

태백이란 도시는 첩첩한 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어

마치 우물 속에 퐁당 빠져서 하늘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두문동재서 내려다본 산봉우리의 물결

 

두문동재 도로변에 세워진 비단왕 백토마

 

고한 두문동재에서 40리 길이나 되는 두문동재를 넘는 동안 민가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우뚝하게 솟아 있는 고적한 산봉우리들과 고요한 하늘뿐이다 

이 길고 지루한 고갯길에 자동차 엔진 소리마저 끊어지자 

매봉산 금대봉 두문동재는 이렇게 온종일 적막 속에 휩싸여 있다 

 

두문동재에 세워진 비단왕 백토마

 

이 두문동재(싸리재) 아래의 골짜기에는 싸리밭골이란 마을이 있었다

싸리재의 가파른 골짜기마다 싸리나무 울타리와 사립문들 ,,

나는 아직도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 

싸리나무 울타리 안에서 익어가던 장독들과

검은 탄광촌에 하얗게 빛나던 싸리나무 꽃들의 기억을,,,

그리고 추전역 골짜기에 게딱지 같이 올망졸망 붙어 있던 검은 판잣집들 ,,

 

마당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싸리나무 울타리 안에서

싸리나무 빗자루로 검은 마당을 비질하던 탄광촌 아낙들과

울타리 안으로 뻔히 들여다 보이던 화전민들의 싸리나무 살림살이들 ,,

소쿠리, 채반, 반짇고리, 삼태기 ,,

싸리나무로 살림살이들을 만들어 쓰던 사람들은 이제 자취를 감추어 버렸지만

아직도 싸리재에서 늦가을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잉 ~ 잉 ~ 무심한 휘파람 소리를 낸다 

 

잊혀진 고갯길 두문동재(써라쟈) - 태백, 고한

 

2001년 매봉산 두문동재 터널이 개통되기 전, 태백과 고한읍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는

구절양장 휘어진 대하장강 같은 급경사 고갯길 이 두문동재뿐이었다 

하지만 터널이 뚫린 뒤 두문동재 정상을 중심으로 한 양쪽 구간 20리,

도합 40리 고갯길은 없어도 불편한 사람 하나 없는 잊힌 길이 되었다 

 

잊혀진 고갯길 두문동재 - 태백, 고한

 

금대봉, 두문동재(싸리재) 옛길은 길이 비좁고 경사와 굴곡이 심하여

눈이 조금만 내려도 넘기 힘든 아주 험한 고갯길이다.

함백산 만항재와 함께 자동차로 넘을 수 있는 국내의 고갯길 중에서는 가장 높다

 

태백방향에서 다시 고한방향으로 올라가는 두문동재

 

사실을 말하자면 태백에서 고한읍으로 가던 길에 옛 고갯길 두문동재를 넘어서 가려고 했지만 

비단왕이 예전에 태백에서 두문동재를 넘나들던 길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곳 사람들에게 몇 번을 물어도 봤지만 두문동재 터널이 뚫리면서

길이 잘려 나가고 허물어져 자신들도 알 수가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금대봉 두문동재 터널을 지나 고한읍 두문동까지 온 다음,

두문동에서 이곳 두문동재(싸리재)를넘었다가 다시 고한읍으로 돌아 나오는 중이다.

저 길의 끝이 두문동재 정상이다

 

매봉산 두문동재(싸리재) 정상

 

두문동재 정상에서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삼수동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이 재를 가리켜 두문동재라고 부르고 있는데 90년 대 

당시는 이 고개의 정상에 싸리재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국새서 자동차가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는? 함백산 만항재 1330m

다음으로 높은 고개는? 이곳 두문동재(싸리재) 1268m

 

이렇게 함백산 만항재와 매봉산 싸리재는 해발 고도가 약 60m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싸리재(두문동재)를 넘어 태백산 방향으로 가려면 또다시 1300 고지의 만항재를 넘어야 한다

그러니까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고개가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태백에서 고한으로 넘어오면서 바라본 고한읍 방향의 산맥들

 

금대봉 두문동재 정상에서 내려다본 태백의 산봉우리들은 처연함을 넘어 유장하기까지 했다

 고한 두문동에서 40리 길이나 되는 두문동재를 넘는 동안 민가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우뚝우뚝 솟은 고적한 산봉우리들과 고요한 하늘뿐이다

이 길고 지루한 고갯길에 자동차 엔진소리마저 끊어지자

두문동재는 이렇게 온종일 적막 속에 휩싸여 있다 

 

태백에서 고한으로 넘어오면서 바라본 고한읍 방향의 산맥들

 

정선 고한 두문동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두문불출하여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두문동(杜門洞)은 본래 북녘 땅 황해도의 어느 마을 지명이었다고 한다

개성의 송악 만수산에 두문동이 있었는데 그곳에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이 은둔해 살았다 한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이들을 회유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개성 두문동에 불을 질러 버렸다 하고, 그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 죽고

겨우 살아남은 고려의 충신들이 흘러들어 간 곳이 바로 정선 고한 땅이었다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세상과 돌아앉아 문을 걸고 살았다 해서 두문동(杜門洞)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둠이 내리고 있는 두문동 시내버스 간이 정류장

 

두문불출 두문동(杜門洞)? 

 이 두문동재를 넘으면 크게 밝다는 태백(太白)이고

바로 이곳은 세상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돌아 앉았다 해서

크게 어둡다는 두문동(杜門洞)이 되었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밤과 달도 오그라든 그믐밤이면 탄광의 탄더미들과

시커멓게 덮쳐오는 산들 때문에 죽음의 고개라 불렸었던 이곳 두문동은

이제 태백으로 넘는 터널도 시원스럽게 뚫렸으니

더 이상 세상과 돌아앉은 두문동(杜門洞)이란 이름이 무색해졌다 

 

두문동재 터널과 두문동재 옛 고갯길이 갈려지는곳 - 정선군 고한읍 두문동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 이곳 두문동재 오르는 길목은 버려진 터더미가 그대로 산을 이루고 있었고 

광부들이 살다가 버리고 간 빈 집들 또한 피폐한 모습으로 즐비하게 버려져 있었다

그런데 2008년 초, 터널이 개통되면서 모두 정리가 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