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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하멜 표류기, 강진 전라 병영성 백토마로 돌아보니 하멜, 박연 후손들은 어디에?

by 비단왕 2024. 4. 4.

강진 전라 병영성

 

총인구 1,600여 명이 올망졸망 모여 산다는 강진군 병영면 

그곳에도 이리 큼직해 보이는 성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야 강진 전라 병영성이라고 한다 

조선 태종 때 축조되었다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에 축조된 성이다 

전라도와 제주도의 군사들을 총괄했다는 강진 전라 병영성 

하지만 지금 현재 성 안에 남아 있는 축조물과 시설물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1890년 갑오경장 때 동학 농민들에 함락되어 모조리 불에 타 소실되었다나?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 

폐허에 서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 

1650년 대, 한때 이곳에 억류되었던 하멜과 그 일행들이

보리 고개를 넘으며 주먹밥과 나무껍질로 연명하며 한 번쯤 불러 보았음직한 노래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중국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스페르 웨르호라는 상선이 제주 산방산 용머리 해안에서 풍랑을 만나 좌초 

승선 인원 60여 명중 반절은 풍랑에 휩쓸려 죽고 나머지 30여 명은 제주 용머리 해안에 상륙 

제주에서 1천 여명이나 되는 포졸들에게 둘러싸여 제주 관아으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당시 제주 목사 이원진의 배려로 6개월 정도는 제주도에서 평화로이 지냈다  

하지만 그후 효종의 명으로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고부터 이들의 파란 만장한 일생이 시작된다 

 

강진 전라 병영성

 

강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다, 그리고 강진만의 고려청자 가마터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다 

하지만 강진의 병영면은 강진 바다에서 북쪽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광활한 들판과 멀리 강진만의 산맥들 뿐이다 

 

머나먼 서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 

만리 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 

한 주먹 주먹밥에 설음을 타서 먹어도 ~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 

 

350여 년 전, 이곳에 억류되었던 하멜과 그 일행들이

눈물 섞인 주먹밥을 먹으며 한 번쯤 이 노래를 불러보지 않았을까? 

이제 영영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공포감과 함께 ,,

 

어느 시골 마을을 들어서더라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십자가 건물이다 

웬 십자가들이 그렇게 많은지, 여기도 저기도 거기도 요기도 온통 십자가로 온 동네를 도배한다 

마을 골목골목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퉈 십자가를 꼽는다 

십자가인지, 빨대인지 ,,, 

이런 마을에서 뭐 빨아먹을 게 있다고 ,,,

 

전라 병영성 앞, 하멜 기념관

 

전라 병영성 앞에는 하멜 기념관이 번듯하게 세워져 있었다 

인구 1,600여 명 산다는 전라도 변방 마을 외진 곳에 뭐 이런 기념관이 다 있다냐? 

 

전라 병영성 앞, 하멜 기념관

 

전라 병영성 앞, 하멜 기념관

 

여기서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녹동 아저씨와 비단왕뿐이었다 

병영성만큼이나 썰렁해 보이는 하멜 기념관, 

하멜이 병영성에 와서 한 일이라곤 당시 병영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 몰고 밭을 매었다는 것 

그리고 흉년이 들면 마을 사람들에게 구걸해서 연명을 했다는 것 

산에서 나무를 해다 시장에 내다 팔아 일용할 양식을 구해 왔다는 것 

간혹 병영성에 들어가 아침 점호, 저녁 점호, 뒤로 번호!! 

흐이나, 두울, 세엣, 넷, 다섯 ,,, 

어디 탈영한 사람 있나? 확인 점호를 했다는 거 외에는 뚜렷한 업적은 없다 

그래도 기념관은 이렇게 버젓이 세워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멜 기념관은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모두들 하멜이 이곳에 와서 무엇을 했나?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멜 기념관 앞에 세워진 전라 병사 장군 비

 

기념관 앞에 세워진 하멜 석상

 

1650년 대 중반, 강진 병영에 억류되었던 하멜의 복장이 저러했을까? 

조선 억류 7년 째로 접어들던 해 

하멜은 한양 훈련 도감에서 조선의 변방,, 강진 병영성으로 퇴출당했다 

강진 병영성으로 들어왔을 땐 포졸 복장이었다가 

쌀 이 외의 생필품을 구하려면 바지 저고리 입고 머리에 상투를 틀고

밭을 갈고 소 몰고 쟁기질을 해야 했을 것이다 

왜냐 하면 당시 조선 정부에서는 쌀 이외에는 아무것도 조달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나머지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흉년이 들면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구걸행각을 해야 했다 

 

강진 하멜 기념관에 세워진 네덜란드 풍차

 

하멜이 제주 산방산 용머리 해안에 난파당하고 제주 관아로 압송되었을 때 

조선인들과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당시, 제주 목사, 이원진은 한양으로 연락,

30여 명의 푸른 눈에 큰 코를 가진 서양인을 억류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보냈다 

당시 효종은 아버지 인종 때 억류되었던 네덜란드 인

벨테 브레이, 박연을 제주 특사로 보내 소통을 시도했다 

 

훈련 도감에 근무 중인 네덜란드 인 벨테 브레이, 박연은

당시 나이 58세였으며 조선 최초로 조선에 귀화한 서양인이다 

벨테 브레이, 박연도 하멜처럼 제주 인근해상에 난파되어 조선에 억류되었다가 

30년 동안 조선인이 되어 살고 있는 조선 최초의 서양인이었다 

물론 그도 인종에게 고향 네덜란드로 보내 달라고

손짓 발짓 하며 빌고 빌고 또 빌었건만 인종의 대답은 단호했다 

네가 날개 달린 새가 아닌 이상, 조선을 나간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 

 

이 이야기를 들은 하멜은 절망했다 

한가닥 실낱같은 희망마저 접어야 했던 하멜은 전라 병영성으로 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공포감 속에 치를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벨테브레이, 박연도 10여 년간 고향 네덜란드로 보내 달라고 인조에게 끈질기게 간청하자 

인조는 꾀를 내어 조선인 여자를 박연에게 붙여주었다 

조선인 여자는 글 선생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박연의 글 선생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눈이 맞아 조선인 여자 글선생과 혼인을 하고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하지만 박연의 두 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혀 없다 

당시, 서양인을 본 적도 없는 조선인들에게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지는 않았는지,,,

 

지금도 병영성 앞 마을에는 오백 년 된 은행나무가 있고 

은행나무 뒷골목으로는 오래된 마을 돌담 길이 있다 

그 은행나무 돌담길 어느 집에서 살았다고 하멜은 표류기에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강진 전라 병영성 앞에 조성된 하멜 기념관

 

1,400년 경 태종 때 축조 되었다는 강진 병영성

 

1,400년 경 태종 때 축조 되었다는 강진 병영성

 

1,400년 경 태종 때 축조 되었다는 강진 병영성

 

1,400년 경 태종 때 축조 되었다는 강진 병영성

 

하멜과 그 일행들이 병영 생활을 잠시 했다는 강진 전라 병영성은

현재 성 안의 시설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1,890년 대 갑오경장 때 동학 농민군들에 위해 점령 되었다가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지만 성곽은 그 어떤 한국의 성들보다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전라도 변방지역이라 사람의 손때가 덜 탔기 때문 아닐까? 

 

남아 있는 것이라곤 달랑 오래된 고목 한 그루 

저 고목은 오백 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350년 전 당시 하멜 일행도 저 고목을 보며 망향가를 부르지 않았을까? 

 

머나먼 서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

 

병영성에서 바라본 강진 병영 마을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

 

1417년 태종 때 병마절도사가 축조해서 1895년 고종 갑오개혁까지

그 기능이 어어졌다는 강진 전라 병영성은 북문, 동문, 서문, 남문으로 이루어졌으며 

지금 보고 있는 문은 동문이다   

그리고 성 안에는 동헌을 비롯, 객사, 영청, 군기청까지 있었다고 하니

당시 강진 병영은 꽤 번화했던 마을이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무리 번화하면 뭐 하나? 

하멜과 일행들도 이곳으로 전입온 군사들인데 군사들이 먹고 자고 할 곳이 없어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걸로 연명했다고 하니

시 병영성 사기는 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듯 ,,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에서 바라본 병영 마을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에서 바라본 남문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에서 바라본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에서 바라본 병영 마을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 누각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에서 바라본 북문

 

고목 뒤에서 금방이라도 바지 저고리에 상투를 튼 350년 전, 하멜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헬로우 ~~ 코리언 맨 

혹시, 내 고향 네덜란드를 아시나요?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에서 바라본 병영 마을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

 

이렇게 단단한 성곽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 웬만한 외적의 침입은 힘들 것 같은데 

도끼, 낫, 삽자루, 곡갱이를 든 동학 농민군들에게 힘없이 무너졌다니 ,,,? 

당시 병영성 군졸들이 군기가 빠질 대로 빠졌던지 

아니면 배급도 제대로 안 되는 병영성 군졸 직업,

그만 때 치고 싶어서 미리 36계 줄행랑을 쳤던지 둘 중의 하나 ,, 

 

강진 전라 병영성 동문에서 바라본 남문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다 알고 있다? 

병영성 고목,,,

 

1650년 대 한양에서 강진으로 유배되 듯 쫓겨온 하멜과 일행 일부는 

강진 병영성에서 여수로 다시 퇴출당하고 

여수에서 조각배 하나 몰래 만들어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에 성공 ,, 

나가사키서 네덜란드까지 극적으로 틸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년 후, 강진 병영성에 남아 있던 일행들도 조선정부의 인간적인 배려로  

모두 고국 네덜란드로 돌려 보냈다 

 

병영성 동문 앞에서 바라본 병영 마을

 

하멜 기념관 앞, 점방도 문이 굳게 잠겨 있으니 이제 어디로 가 볼까나? 

배도 슬슬 고파 오는데,,,

아! 병영 시장, 고추장 도야지 불고기 집으로 가보자! 

요즘 보니 병영 시장 고추장 불고기 집이 마이 뜨더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