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이른 아침
어둠이 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녹동 아저씨는 아직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잠들어 있고
공연히 나그네만 잠을 설치다가 아침 일찍 아파트 문을 열고 슬그머니 길을 나선다
어디로 갈거나~~~~?
그냥 발 따라 길 따라 무심코 가다 보니 어느덧 녹동항
수산시장 경매장은 어젯 저녁 조업이 시원치 않았는지 아직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오잉?
주차 관리, 캠핑카, 노점상 단속?
사람의 발 길이 잘 닫지 않는 이곳에 웬 캠핑카 단속? 노점상 단속?
이곳에 자주 와 보지만 뭔 노점상이 있다고?
아하! 어묵과 커피를 파는 노부부 이야기 하는 모양이네?
캠핑카는 참 많더군
빨주노초파남보,,, 알록 달록한 색상의 캠핑카들,,
앞을 보니 캠핑카는 하나도 안 보인다
역시 효과가 있긴 있나보다
캠핑카 단속 초소를 세워 놓더니,,,
어묵과 커피를 파는 노부부 노점 차는 그냥 여기에 365일 알 박고 있었네
어쩌다 어묵 하나 먹으면서 슬며시 물어본다
"여기에 뭔 사람들이 있다고 어묵을 판다요? 녹동 시장 앞에서 하셔야 많이 팔잖아요?"
"아~~ 전에는 거기서 했당게,,. 그런데 군에서 못하게 해서 이리로 왔지라~~"
여기서 어묵을 파는 노부부는 거금 대교를 건너고 소록 대교를 건너온다고 한다
아마 거금도에 살고 있는 노부부인 듯,,,
지금도 시장 앞, 바닷가 주차장에 가 보면 커피, 어묵을 파는 노점상들이 밤새워 장사하고 있다
그러다 단속하면 이동하는척 하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고,,,
하지만 노부부는 그게 싫었는지 아예 이곳으로 쫓겨와 알박고 있었다
전에는 요 공중화장실 앞에 캠핑카들이 주욱 ~~ 늘어서 있었다
공중 화장실서 캠핑에 필요한 물을 물통에 담아 오고
머리 감고, 세수 하고, 면도하고, 손발 씻고, 쌀 씻고, 채소 과일 씻고, 그릇 닦고 난리 부르스,,,
완전 이판 사판 공사판을 만들어 놓고 가다 보니 캠핑카 단속 초소가 생겼나 보다
그 후론 거짓말처럼 캠핑카들이 어디론가 다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있을까?
녹동항 캠핑카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하~~~ 죄다 여기에 숨어 있었구나!
여기 숨어 무엇들 하는 고우?
껄껄 껄껄~~~~
소록도 동백나무 앞사귀만 푸르고
대숲에 베인 칼바람에 붉은 꽃송이들이 뚝뚝~~
소록도 하늘은 보자기만 하고 속세는 지척인데
막걸릿집 육자배기 하던 젊은 녀자는 어디 갔나?
마하반야 바라밀다 오호옴~~~ 옴 마니 마니 오호옴~~~
아침 식사 못해 후줄한데 아침밥 여분이 없으랴만
막걸리 집 굴뚝이란 놈이 잘 가거랏!!
이 따위로 살다 죽을래?
꺼얼 껄껄,,,,
소록도, 거금도 소금 바람도 잊아뿌고
녹동항 주차장 한가운데서 재미나게 사시는데,,
어제 먹다 남은 팔천 원짜리 낙지 한 마리
서울로 모셔다가 오래 보자 하였더니
느닷없는 죽비 소리로 게으르구낫!
할!!
득량도는 득량만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이다
면적은 가로 3Km, 세로 1Km의 아주 작은 섬으로서
약 130여 가구에 240여 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만약 이곳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물은 필수로 가지고 가야 한다
동네에 슈퍼가 없기 때문,,,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여기서 약 3~4Km,,, 정도? 배로 20~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예전에는 장흥군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 현재는 고흥군 도양읍에 속해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식량을 보관했던 섬이라 해서 지금도 득량도라 불린다
이곳은 반건조 생선 등을 파는 건어물 점이다
대부분 평일은 죄다 문이 닫혀 있고 주말에만 문을 여는 상점들이다
주 손님 층은 낚시꾼, 등산객들인데 낚시꾼들보다 등산객들이 더 많이 오는 편,,,
물건 가격은 그다지 싸지 않다
그래도 주말만 되면 관광버스를 타고 온 등산객들이 건어물 한 보따리씩 사들고
좋아 죽겠다고 입이 헤벌쭉~~~ 해져서 돌아간다
돌아갈 때 관광버스를 보면 무슨 노래를 틀어 놨는지 쿵쾅쿵쾅 음악 소리가 들리고
앗싸 로비아! 좋오타~~~ 관광버스는 흔들흔들,,,
집에 도착해서는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몸져누워 앓고 있는 사람들도 있더라
강원도 바닷가 항구 경매장은 경매하는 목소리가 군인들 구령처럼 힘이 있고 절도가 있는데
이곳 녹동항 경매하는 소리 들어 보면 산사의 염불 소리와도 같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사바하 ~~ 옴 마니 마니 오호옴~~~
듣다 보면 절로 졸음이 슬슬 올 정도,,,
녹동항 서쪽 주차장, 득량도 도선장, 건어물 노점촌,
수산시장 경매장, 회센터를 돌아보고 나오는데 아이고 다리야 ~~~
좀 쉬었다 가려고 군내버스 승강장 의자에 앉았더니 오잉?
엉덩이기 뜨근해져 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웬 조화야?
화들짝 놀라 승강장 의자를 요리조리 살펴보니
와~~~~ 의자 아래에 전기장판이 깔려 있다니?
서울과 수도권에도 이런 시설 못 봤는데 대한민국의 최 남단
그것도 땅 끝 마을 변방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데에 대해 비단 왕은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30년~~ 70년 대까지는 한센인들이 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로 들어갔다고 한다
강제로 끌려와 수용된 한센인들도 있었지만
인간 세상의 온갖 멸시와 천대를 당하며 쫓겨 다니다 스스로 병을 치료해 보고자 왔던 한센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로 건너갔다
한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희망도 기약도 없는 소록도행,,
세상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한센인들에게 저질렀던 악행이 더 심했다고 하지만
사실인 즉,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인 관리들이 들어왔을 때 그 악행은 정점에 달했다고 한다
내가 예전에 소록도 한센인 촌을 포스팅했을 때
어느 누군가 내 블로그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우리 아버지가 50년대, 저기 소록도에 수용 됐었는데요, 당시는 한국인 관리들이었고
한국인 관리들의 폭행이 어찌나 심했던지 한센인들이 집단 반란을 일으켜
수십 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고,,,"
지금도 저 소록도에 들어가 보면 그때 총 맞아 죽었던 한센인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일본인 관리들의 악행만 이야기한다
사실인 즉, 일본이 패망하고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을 때,
바로 그때 한국인 관리들이 들어왔고 그 한국인 관리에 위해 죽어 나간 한센인들이 훨씬 많았는데,,,
지금 현재, 소록도 전시관에 들어가 보면 보리피리 시인이었던 한하운의 유품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러면 보리피리 시인 한하운도 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로 들어갔을까?
거기까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하운의 "황톳길"이란 시를 읽어 보면 소록도는 몰라도
전라도 천리길은 걸어간 듯하다
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없어질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길
먼 전라도 길
,
,
,
한하운이 이 시를 쓸 때까지만 해도 일본 패망 후인
49년 4월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천안 삼거리에서 고흥 녹동 선착장까지 달려보니 305Km나 나왔다
천리 길이면 몇 킬로미터 일까?
400Km다
하지만 이것은 천안 ~ 논산 고속도로를 달렸을 때의 거리고
완주 ~ 순천 고속도로를 달렸을 때의 거리다
아마 천안 - 대전 - 서대전 - 논산,,, 이렇게 달리면 400Km,,
즉 천리는 족히 될 것이다
그 멀고도 먼 길을 찌가다비 하나 신고 걸었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된다
(찌가다비:작업화인지, 버선인지의 일본 말)
하지만 조선 시대 유배를 당하던 사람도 한양을 기준으로 천리를 채워야 했었다
당시 유배자들이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짚신을 도대체 몇 개를 갈아 신었을까?
그리고 시에서 보면 천안 삼거리라는 지명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삼거리 버드나무 아래서 신발을 벗어 보니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고 했다
천안 삼거리는 지금 현재도 버드나무들이 참 많다
모두 능수버들이다
그 능수나무 버들길을 따라 걷는데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걸렸고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이라고 했다
천안 삼거리는 60년대만 해도 비포장 자갈길이었다
그러면 전라도 길은 어땠을까?
아마 보리밭에서 보리피리 만들어 불며 보리밭 황톳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니,,, 발가락 두 개 밖에 안 남았다는데 보리피리를 불 정황이 있었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당연하다는 듯, 발가락이 또 하나 없어졌다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으니,,,
고향에서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타향에서도 모래 세례를 받으며 쫓겨 다녀야 했던 한센인들이
소록도라는 수용소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탔던 선착장이다
한센인들에게 소록도는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끔찍한 형벌의 현장이었다
더러는 저곳에서 살다가 같은 한센인끼리 결혼한 사람도 있지만
아이를 낳으면 문둥병 검사부터 한다
아이가 양성이면 소록도에 계속 남게 되고 음성이면 육지 보호소로 이관된다
아이와 이별한 부모들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아이를 볼 수 있지만 그것도 잠깐 ,,
부모는 바람 부는 반대 방향에서, 아이는 바람 부는 방향에서,
잠시 바라 보고는 또다시 헤어져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강제 노역(오마 간척지, 방조제 건설 등)과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 없었고 강제낙태와 단종수술도 강제로 받아야만 했다
지금도 저 소록도에는 일제 강점기 때 자행되었던
단종 수술대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지금 현재 소록도는 수용소라기보다 요양원이라는 느낌이 더 강렬했다
그것도 시설 좋은 대한민국 최고의 요양원,,,
그들은 지금 현재도 저곳에서 생활하지만 표정들이 모두 밝다
어쩌다 외지인 관광객들과 마주치게 되면 먼저 "안녕하세요!"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대부분 70~80대의 전동 사륜 휠체어를 탄 노인들이다
그들은 20대 또는 30, 40 대 시절에 소록도로 들어와서 아직까지도 저곳에서 산다
그런 한센인들이 현재 500여 명 정도 된다나,,,?
1950년
구십 년 녹동 시장을 백토마로 돌아보니
시장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90년 세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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