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 석포면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북쪽으로는 삼척시와 접해 있으며 또한 태백시와도 경계를 이루고 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서 강원도 삼척시로 가려면 면산 석개재를 넘어야 하는데
석개재는 면산과 묘봉 사이에 있는 고갯길로서 군내버스도 다니지 않는 아주 험준한 고갯길이다
그 고갯길은 면산 석개재이며 석개재에는 넓은 고랭지 배추밭이 있다
그 옆으로는 전설속에나 등장할 법한 오전골(예부터 오동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
늪지대였다는 너뱅이골(느뱀이골)이 있었고 또 마을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는 고랭지 배추밭 뿐,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있을 뿐,,,
경상북도 봉화 석포에서 삼척으로 넘는 면산 석재재를 오르려면
이렇게 비좁은 석포마을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
앞에 옛날식 다방이 하나 있고 그 뒤로 석포 이발관이 있는데
석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석포 이발관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발관이라고 한다
여기는 석개재로 오르는 골목인데 바로 앞은 석포 초등학교이다
석포면은 사방 산으로 꽉 막힌 첩첩산골 마을이지만 영풍 석포 제련소가 있어 아이들도 많다
석포면 총인구 중 70~80%가 영풍 석포 제련소에서 근무한다고 하니
석포면 전체가 영풍 제련소 때문에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포에서 이곳까지는 경사가 완만하고 햇볕도 잘 드는 양지바른 마을인 반면
이곳에서부터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까지의 내리막길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주 험준한 구간이다
지도상에는 석개재 정상은 면산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두리봉으로 부른다
이 고갯길을 따라 7Km 정도 내려가면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의 덕풍계곡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데
덕풍계곡은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마을이다
면산 석개재는 경북 봉화군 석포면과 강원도 삼척시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로서
2천 년 대 초까지만 해도 비포장 고갯길이었다
이제 이 고갯길이 포장된 지도 어언 20여 년 세월,,,
비만 오면 무너져 내리던 이 고갯길은 이제 비만 오면 산 아래 계곡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먼 옛날, 나라에 큰 난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이곳으로 흘러들어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난을 면했다고 해서 지금까지도 면산(免山)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도 석개재 정상에서 석포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고개 중턱에 넓게 펼쳐진 고랭지 채소밭이 있는데
그 화전은 석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화전이라고 한다
면산 석개재는 2천 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포장 자갈길이어서 4륜 구동차도 넘기 힘들었다
하지만 도로가 포장되고 나서도
이 고갯길은 군내버스 한 대 다니지 않는 고적한 고갯길로 남아 있다
2천 년 대 초, 면산 석개재 중간 지점에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그 마을은 삼방마을이었다
이 공원 주변은 탄광 사무실 하나 외에 아무 것도 없었는데
이날 와 보니 이렇게 말끔한 공원까지 조성되어 있었다
이 삼방 마을 공원 안내문에서 보듯,
삼방은 산과 석탄, 나무 등 세 가지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거기다 하나 더 붙이고 싶다면 물을 붙이고 싶다
풍곡리라는 마을 지명도 물이 풍부해서 붙여진 이름이니,,,,
실제로 풍곡리는 탄을 캐던 광산이 있었고 여기 삼방마을에는 탄광 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9년 흉년 뒤의 곡식 종자는 삼풍에서 구하라!"
토정 이지함 선생이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이지함은 이곳 사람이 아니다
토정은 충남 보령 사람이다
보령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내고 16세 때 부모를 여의고 한양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벼슬은 하지 않았으나 조정의 고위급 대신들하고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조에서 선조 때까지 있었던 인물로 토정비결이라는 책을 저술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이지함의 문집에는 토정비결이라는 책자가 없다고 한다
아마 후대에 어느 누가 저술하지 않았을까? 싶은,,,
그 토정 이지함이 석포, 삼척 삼방마을까지 왔다고 하니
그의 방랑벽이 어느 정도인지 과히 짐작이 될만한다
저 아래 깊은 골짜기 마을이 풍곡리다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라는,,,
삼방 마을에서 깊은 골짜기를 따라 3Km 정도 내려오니 풍곡 분교였다
가곡면 오저 초등학교 풍곡 분교라는,,,
지금 현재는 폐교된 분교장이다
인심 좋고 살기 좋고 풍요로워 그래서 덕풍계곡 마을이라는 문구,
하지만 지금 현재 덕풍계곡에 있던 원주민들은 거의 마을을 떠났다
다만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민박이나 펜션을 운영하고 있을 뿐,,,
풍곡 분교에는 이순신 장군과 책 읽은 어린이 상이 세워져 있었지만
반공 소년 이승복과 효자 소년 정재수 상은 보이지 않았다
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공비들은 울진 해안으로 침투하여
이곳 응봉산 덕풍계곡을 따라 오대산 평창군까지 침투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여기는 무장공비 상습 침투지역이니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은 당연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반공소년 동상이 없다니,,,
예전에는 풍곡 분교장에 유치원까지 있었지만 지금 현재 풍곡리에는 어린이가 없다
다들 풍곡리 탄광이 한창 잘 돌아가던 때의 이야기다
유치원 옆에는 보육실까지 있던 마을이었는데
풍곡리 탄광 폐광과 함께 그들은 모두 다른 도시로 떠났다
학교환경 정화구역이라는 안내문
분교장 주변 30m 이내 각종 퇴폐, 변태 영업, 사행성 영업, 불법 음반 비디오테이프,
불량도서 취급 판매, 각종 풍기문란 행위를 일체 금지한다는 안내문인데
풍곡리에는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구명가게 두 개뿐,,,
이런 안내문은 전혀 필요치 않은 마을이다
풍곡 분교장 옆에 있는 초막 슈퍼라는 구멍가게
이곳이 바로 가곡면 풍곡리에서 응봉산 덕풍계곡 용소골로 가는 초입이다
산행은 풍곡리의 풍곡초등학교에서 시작된다
2천 년 대 초까지만 해도 덕풍마을까지 가려면 걸어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5Km 지점인 덕풍마을까지는 승용차 정도는 들어갈 수 있게끔 길을 닦아 놓았다
덕풍마을은 2천 년 대 초까지만 해도 약 10여 가구가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마을이었다
지금은 화전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자리에 자그마한 민박집들 7~8개 정도가 들어서 있다
풍곡리에서 덕풍마을까지 약 5Km 구간에는 3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한 가구는 2010년도 큰 홍수에 불어난 물에 집이 잠기자 이사가 버리고 현재 남아있는 집은 2 가구다
그중 계곡 입구에 있는 집은 전기가 들어오지만
계곡 중간지점에 있는 집은 지금 현재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채는 어느 괴승이 30년을 넘게 살고 있다
이 계곡에는 산천어가 많이 살고 있으며 예전에는 열목어들도 많았다
2천 년대 초까지만 해도 덕풍마을 아이들이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창을 만들어 고기를 잡기도 했다
덕풍마을 아이들은 십오 리 길을 매일같이 걸어서 이 계곡을 지나 풍곡 분교로 갔었고
또 학교 수업이 끝나면 또 매일같이 이곳을 지나 집으로 가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덕풍마을에서 이 계곡을 지나 풍곡분교로 걸어가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그 아이들은 모두 자라서 도시로 나갔고 이제 덕풍마을로 걸어가는 아이들은 더 이상 없다
2000년대 초, 덕풍마을로 들어갈 때 풍곡분교 운동장에 차를 세워놓고 계곡길을 따라
전기불도 없는 어느 외딴 산채를 찾아가곤 했었다
풍곡 분교에서 그 산채까지는 약 십오 리 길,,, 한 시간은 걸어가야 한다
그때는 저녁 무렵인지라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부지런히 걸었다
하지만 날은 금세 어두워지고 말았다
이런 깊은 계곡에서는 땅거미가 내려앉는가 싶으면
곧바로 주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세상으로 변하고 만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물소리 따라 걸어가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내가 찾는 그 외딴 산채는 어디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는지 그 흔적은 오리무중이었으며
가도 가도 산 넘어 산이었고 물 건너 물이었다
그때는 산 길 십리가 왜 그리 멀고 두렵게만 느껴졌는지,,,
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도 이 계곡으로 침투했다고 하는데,,,
덕풍계곡 산등성이로는 무덤도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였다
화전민들의 무덤인 것 같았다
그 무덤 가까이에서는 죽은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휘파람 새도 종일 울었다
휘이이 ~~ 휘이이 ~~~ 휘이이 ~~~
휘파람새에게 홀리면 큰일 난다는 말도 떠올랐다
한줄기 불빛조차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반딧불이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물소리와 반딧불을 이정표 삼아 산속을 걷고 또 걸었지만
한 시간을 걸어도 그 산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때 나는 배낭을 털썩 깔고 주저앉아 잠시 가뿐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야옹~~~ 하는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 거 아닌가?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근처에 민가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검은 고양이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녀석을 슬그머니 따라갔다
잠시 후 키가 큰 소나무 앞에서 몸을 움칫하며 발걸음을 멈추는 검은 고양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나무 앞에는 내가 찾아 헤매던 그 산채가 어둠 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검은 고양이는 마을을 도망 나와
덕풍계곡 산채에 둥지를 틀고 새끼까지 낳은 도둑고양이었다
산채의 주인이 먹을 것을 계속 주니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그 검은 고양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차례 했다
그리고 배낭에서 꽁치 통조림 하나 따서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이때 녀석의 새끼로 보이는 세녀석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그 통조림을 허겁지겁 단숨에 먹어치웠다
어미 하나에 새끼 세 녀석,,,
네 녀석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이번에는 라면을 한 봉지 뜯어서 던져 주었다
컴컴하고 고적한 밤에 야옹이들의 라면 뿌셔먹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었다
부스럭부스럭~~ 우걱우걱~~ 쩝쩝 ~~ 꾸울꺽 ~~~
그런데 그 칠흑 같은 밤에 산채의 주인인 괴승은 온 데 간데없고 방문은 모두 잠겨있는 것이 아닌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에 두견새와 휘파람 새는 번갈아가며 울고 있었다
소쩍 ~ 소쩍~~ 휘이이 ~~ 휘이이 ~~~
어디선가 멧돼지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라이터 불을 켜고 더듬거리며 산채의 창호문고리를 확 뽑아냈다
창호문 문짝은 예상보다 쉽게 뽑아졌다
오래된 문짝이다 보니 나무가 적당히 삭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난 다음 문고리를 다시 나무에 끼워 넣어 원래대로 만들었다
방으로 들어가 촛불을 밝히고 배낭을 풀어 두견새, 휘파람새 검은 고양이 친구 삼아
두꺼비표 소주를 한 병 비웠다
그래도 가스레인지는 있었기에 레인지에 불을 붙여 라면 하나 끓여 먹고 그만 거꾸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건 또 뭐임?
예전에 못 보던 별유천지라는 장승까지 세워져 있으니 ,,,
덕풍계곡 산호정사로 오르는 길목
오잉? 그런데 이건 또 뭐임?
손님이 주인인 집?
객실 요금은 손님이 알아서 결정하라고?
아니, 산호정사라는 암자에서 민박도 한다는 건가?
그렇다면 승복을 벗고 청바지에 셔츠하나 걸치고 민박을 하던지,,,
안 된다고?
왜?
그나마 승복이라도 입고 대그빡이라도 빠빡 밀고 있어야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당신들이 청바지에 셔츠 하나 입고 대그빡 길어도 세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면
그때 스님으로 인정해 줄게
뭐여?
객실 요금을 손님이 알아서 결정하라니,,,?
이제 카페와 식사까지 한다고?
아! 소문에 들으니 의정부 망월사에서 독실한 여신도 하나를 데리고 왔다고?
그래서 그 여신도에게는 평강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자신은 스스로 음봉산 덕풍계곡 바보 온달 석무공이 되었다고?
그래서 그 평강이라는 ,,, 아니 황다정이라고 했던가?
그 여인이 카페를 운영하고 식사까지 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요즘은 평강이라는 여인이 안 보이는 것 같더군
그러고 보니 산호정사라는 현판도 안 보이는 거 같네
아! 요즘은 소림사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고?
요즘 보아하니 사람들이 당신을 석무공으로 부르더만,,,
소림사 현판을 붙이고 무공은 좀 연마를 했나?
그런데 무예를 잘해서 석무공인가?
아니면 돌 머리라서 석무공인가?
지금 현재도 이 외딴 산채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보일러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티브이도 없고
오디오,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세탁기, 에어컨은 말할 것도 없고
컴퓨터, 신문, 잡지책, 하다 못해 그 흔해빠진 카세트도 없다
유일하게 바깥세상 소식을 알려주는 것은 건전지를 넣고 들을 수 있는 작은 트랜지스터 하나뿐이다
이제 응봉산 덕풍계곡 산호정사가 하다 하다 별짓을 다 하네
고스트 스팟 흉가체험 사이트까지 알려지고,,,
욕본다! 덕풍계곡 산호정사!
EBS 한국 기행에도 출현하셨네
욕본다!
그렇게 틀고 앉아 있으면 내 과거가 흔적없이 사라지나?
그런데 늘 같이 있던 아내, 평강은 어디갔노?
그리고 뿌린대로 거두니라,,,라는 말 잊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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