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공양왕릉은 궁촌항 마을회관 앞, 얕은 산기슭에 묻혀 있다
황해도 개경에 있던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 왜 여기에 묻혀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왕릉 앞, 안내 표지판을 보니 이해가 갈 듯했다
이 안내 표지판의 위하면 여기에 있는 무덤들은 공양왕과 그의 아들 왕우, 왕석의 무덤이라 한다
그리고 공양왕 4년 1392년 7월에 이성계가 즉위하고
다음 달 8월에 공양왕을 폐위 .. 원주로 유배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성계가 불안감을 느껴 공양왕의 두 아들 왕우와 왕석을 강원도 간성으로 옮겼으나
그 역시 불안하여 1394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로 유배지를 옮겼다나?
그리고 한 달 뒤인 4월 17일 그들 삼부자를 모두 죽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강원도 간성에서 삼척 근덕면까지 이들은 어떤 경로로 유배를 왔을까?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 수라지재 정상에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 수라비와 함께 안내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 안내비에는 이런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께서 1392년 폐위된 후 삼척의 궁촌으로 유배되어 가시던 중,
이 고개에서 수라(왕이 드는 음식)를 들었다 하여 수라리재라고 불리어 오고 있다"
아니, 강원도 간성에서 곧장 바닷길을 따라 속초, 강릉, 동해시, 삼척으로 오면 쉬울 텐데
왜 굳이 첩첩산 강원도 내륙 깊숙한 영월 망경대산 수라리재를 넘었을까?
수라리재는 무척 가파르고 험한 고갯길이라 산 허리를 몇 바퀴 돌아야 한다
그래야 영월 중동면에 도착할 수 있고 중동면에서 삼척 궁촌으로 가려면
또 하나의 어마 무시한 태백산 화방재를 넘어야 한다
그리고 또 태백에서 연화산을 넘고 통리 신리 고개를 넘어야 하는 무척 험한 험로다
그렇다면 이성계가 공양왕을 뺑뻉이 돌리기로 작정을 했지 않았을까?
그래서 쉬운 바닷길을 피하고 강원도 남부의 험하고 험한 산길을 유배길로 정했다는 결론 밖에는,,,
그러니까 강원도 내륙 깊숙이 한 바퀴 뺑뻉이 돌려서 삼척으로 보냈다는 이야기 밖에는,,,
그런데 자세히 보니 무덤이 네 개나 된다
오른쪽 가장 큰 무덤은 공양왕 무덤이겠고
옆으로 두 기의 무덤은 공양왕의 두 아들, 왕석과 왕우의 무덤,,,
그렇다면 아래쪽에 있는 또 하나의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안내 표지판에서 보면 분명 공양왕은 두 아들과 함께 이곳 삼척 궁촌으로 유배를 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말의 무덤? 아님 시중들던 시녀의 무덤?
여하튼 제33대 창왕이 폐위되고 참수당하자
이성계 일당들에 위해 공양왕은 고려의 왕으로 등극한다
등신 짓도 해 보고 정치적 야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별의별 짓을 다했지만
이성계 일당은 그를 억지로 왕위에 올려놓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공양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이성계의 바지사장 노릇만 하다가
삼척으로 유배되어 결국 처형당하고 말았다
창왕의 아버지 우왕도 이성계가 암살 시도 후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당하고
8세의 어린 나이로 등극한 창왕도 9세 때 이성계에게 죽었다
이때 이성계가 창왕을 폐위시킬 명분으로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라 점을 내세웠다
그러면 당연히 창왕도 신돈의 손자가 되는 것이 아님 감?
참 말도 안 되는 별의별 구실을 멋대로 붙여가며 고려 왕조를 맘대로 농락했으니,,,
하지만 학계에서는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맞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창왕은 신돈의 손자라는 명분으로 처형되었고
그 후 공양왕을 내세웠는데 창왕이 신돈의 손자라면 공양왕도 신 씨의 4대 손 아닌감?
그런데도 이성계는 공양왕을 맘보 바지 헛바지,
바지사장으로 내세웠으니 이놈의 속셈은 뻔한 것이다
결국 창왕은 왕위에 오른 지 1년도 채 못되어 아성계는 창왕을 폐하고 참수했다
이때가 창왕 나이 9살이었다
이성계 이놈도 아주 대단한 놈이지
이제 겨우 9세 밖에 안된 창왕의 목을 치다니,,,
천년 왕국 신라를 멸망시킨 고려도 공양왕의 죽음으로 이렇게 멸망했다
이성계 일당은 우왕과 창왕을 공민왕의 자식이 아닌 신돈의 자식들이며 폐위시키고
먼 친척뻘 되는 공양왕을 맘보바지 헛바지 ,, 바지사장으로 왕위에 앉혔다
죽어도 왕이 되기 싫다던 40대 중년의 공양왕은 삼척 근덕면 사래재에서 그렇게 살해당했다
원래 지명은 사래재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살해 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살해재는 지금 궁촌 ,, 공양왕릉 앞, 2차선 도로변 궁촌 버스 승강장이 들어서 있다
그러면 이제 궁촌항 옆, 초곡항으로 슬슬 넘어가 보도록 할까?
삼척 초곡항에 바다 둘레길도 조성해 놓았다고 하는데 왜 이리 조용하지?
궁촌항 보다 더 조용한 것 같네
사람이 없으니 오늘은 초곡항 해변 둘레길을 호젓하게 돌아보고 나올 수 있겠군
삼척 초곡항 둘레길 촛대바위
삼척 초곡항 바다 둘레길은 여기까지만,,,
태풍 피해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복구여?
초곡항 둘레길을 놀며 쉬며 한 바퀴 돌고 나오니 한 시간 정도 걸렸나?
앞에 초곡항이 보인다
이날은 아무도 없는 초곡항 둘레길을 참말로 호젓하게도 돌아다니다 나왔음
삼척 초곡항 수제 어묵과 자연산 돌미역도 같이 판매
여기서 컵라면이나 하나 먹고 갈까? 하다가
북평 아저씨 컵라면 별로라고 하기에 그냥 지나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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