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지리하게 내리던 비도 그치고 정라진항에는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항구에는 어선들이 침묵 속에 정박해 있었으며 부둣가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항구 건너편에 하나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정라진항구!
항구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조용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우선 항구의 여인숙 같은 민박집에 거처를 마련해 놓고
비릿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부둣가 골목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삼척 정라진항 부둣가 골목을 지나 새천년 도로 해변을 조금 거닐었다
캄캄한 어둠 속, 저 편에선 희미한 불빛이 깜박인다
바닷가 포장마차였다
새천년 도로변에 자리 잡은 선술집으로 빨려 들어갔다
선술집 옆으로는 바다가 있었지만 너무 어두워졌기 때문에 육지도 바다도 모두가 까맣게 보였다
이때 시간은 아마 10시가 조금 넘었지 않았나 싶다
늦은 밤 포장마차에는 손님이 없었다
주인은 흐릿한 형광등 아래서 벌떡 일어나더니 물병과 메뉴판을 갖다 놓는다
아두운 항구
방파제에선 눅눅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으며
그물을 손질하느라 환하게 불을 밝혀 놓았던 불빛도 꺼져 있었다
파도가 철썩 거리는 밤바다,
그리고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밖에는 싸락눈 같은 가랑비가 바람에 어지러이 흩날리고 있었고
포장마차 안에서는 늦손님들이 서울에 있을 때의 무용담들로 술자리를 뜨겁게 달구어 간다
가랑비도 부슬부슬 내리겠다, 오랜만에 서울에 살던 삼척친구도 만났겠다
이래 저래 술맛 나는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여인숙 같은 민박집에서 밖으로 나왔다
항구는 어젯밤 왔던 비로 인하여 촉촉하게 젖어 있었으며 해는 이미 방파제 저쪽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조금 더 일찍 나왔으면 삼척항 일출을 봤을 텐데 조금은 아쉬운 아침이었다
삼척 정라진항도 묵호항과 주문진항처럼 오징어 배들이 항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항구 어시장은 수족관들마다 오징어들이 꽉 들어차 가까이서 쳐다보기만 해도 물을 쪽쪽 쏘아댄다
가파른 산등성이 마을 빨랫줄에도 오징어가 빨래집게에 물려 있었고
부둣가 오징어줄에는 빨래와 오징어가 동시에 널려 사이좋게 서로 잘 마르고 있었다
삼척항에는 전에 없던 건어물 거리가 새로 생겼다
정라진항 수산시장 회센터에서 새천년 해변도로까지 도로변에는 건어물 점이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새천년 도로변으로 가다 보니 건어물점 앞에는 보통 오징어보다 훨씬 큰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와~~~ 크긴 크더만
뒤로 가서 살펴보니 오징어가 아니라 한치였다
오징어 떼 속에 있는 덩치 커다란 한치 한 마리
깨불더니 결국 삼척항으로 잡혀와 코가 꿰고 다리까지 꿰어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한치 앞도 못 보고 깨불다 잡혔다고,,,
삼척항 거어물점에는 요렇게 실하게 생긴 엄청 큰 홍어들이 바닷바람에 잘 마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홍어 말리는 모습만 보면 청송 출신 김주영 작가의 홍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인고의 세월
바람나 집을 나간 아버지를 위하여 홍어를 사다가 처마에 걸어놓는 어머니
아무리 홍어가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결코 아버지를 빗대어 홍어를 걸어 놓았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옛날 이곳 삼척의 깊고 깊은 산골 마을에도 이런 홍어가 걸려 있지 않았을까?
그 추운 겨울, 어느 아낙이
처마에 걸어놨을지도 모를 홍어가 삼척항 건어물점에는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그런데 홍어 암컷과 수컷은 과연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식별 방법은 생식기 두 개 달린 녀석이 수컷이고 이렇게 생식기 없는 녀석이 암컷이다
그러면 가오리와 홍어는 또 어떻게 구별을 할까?
날개 부분이 둥근 것은 가오리고 날개 부분이 삼각형으로 각진 것은 홍어다
그리고 생물은 아랫부분 주둥이가 벌겋게 달아 있으면 홍어고
주둥이가 횐색으로 되어 있으면 그건 가오리다
여기 걸려 있는 홍어는 생식기가 보이지 않는다
고로, 이런 녀석들은 홍어 암컷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홍어 수컷
홍어 수컷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생식기가 두 개다
그 생식기의 크기는 자그마치 전체 크기의 5분의 1에서 큰 놈은 3분의 1까지 된다
이런 것이 두 개나 달려 있으니 예부터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의 소유자는 홍어로 표현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홍어 수컷은 배에서 잡히는 대로 가장 먼저 생식기부터 잘라 바다에 버렸다고 한다
홍어 수컷 생식기는 가시가 있어 조업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는 간혹 이런 말들을 한다
"에이~~ 홍어좆 됐네"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때 나오는 탄식의 소리다
그리고 괄시받을 때 이런 볼멘소리도 한다
"이게 나를 완전히 홍어좆으로 아네?"
홍어 수컷 생식기는 두 개나 되지만 일단 잡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나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삼척에도 홍어좆된 사람이 하나 있다
그가 누구냐 하면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
그도 삼척으로 유배를 와서 결국 홍어좆이 되고 말았다
왜냐?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에게 이용당할 대로 이용당하고 결국 삼척 궁촌리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이런 말을 한다
홍어좆된 공양왕이라고,,,
정라진항 부둣가에는 그물이 널려 있었고 빨래와 오징어 널려 있었으며
가파른 산비탈 나릿골 마을에는 사람의 인기척이 없었다
정박 중인 어선의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와 이따금 지나가는 어선의 통통 거리는 소리뿐
나는 항구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저기 가파른 산등성이 마을을 올려다보았다
저곳에는 어떤 삶들이 어떤 모습으로 모여 살고 있을까?
올망졸망한 산꼭대기 마을 ,, 나는 올라가 보기로 했다
정상에 올라오니 아래서 보기와는 영 다르게 전망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나무 지지대 색깔을 보니 이제 막 새로이 조성된 공원 같았다
전망대 공원에서 조금 내려와 가파른 산비탈 나릿골 마을 골목으로 내려왔으나
올망졸망 자리 잡은 슬레이크 지붕의 집들은 사람의 인기척이 없었다
모두 항구로 나가 그물을 손질하거나 아랫마을로 마실을 간 듯,,,
집집마다 작은 텃밭 빨랫줄에는 빨래가 잘 마르고 있었으며
주인 없는 개들은 마당 앞에 엎드려 불청객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바닷가 가파른 언덕배기 마을에서 항구를 내려다보며
소라 껍데기를 주워 한동안 빈둥빈둥 놀았다
삼척 정라진항은 강릉 주문진항과 동해 묵호항과 마찬가지로 오징어 잡이로 유명했던 항구다
2천 년대쯤일까?
삼척항의 남자들은 오징어 잡이 배를 타기도 했고 항구 시멘트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들은 부둣가에서 이른 아침부터 오징어를 손질하거나 건조했다
여기 가파른 산등성이 마을 사람들도 항구에서 그물을 손질하거나 배를 타기도 했다
이제 산등성이 나릿골 마을 사람들 몇몇은 집을 비워두고 어디론가 떠났고
또 몇몇은 아직도 이 가파른 언덕 슬레이트 지붕의 집에서 소탈하게 모여 살고 있다
같은 바다라 해도 대도시인 인천 앞바다나 부산 앞바다 하고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라진 항구의 가파른 산등성이 나릿골 마을에 올라오면
항구의 소탈한 삶의 모습들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번화한 여름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바다가 사람인지 사람이 바다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하지만 정라진항의 산등성이 나릿골 마을에 올라오면 바다가 잘 보인다
바다만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항구의 소탈한 삶의 모습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왠지 접시꽃만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도종환 시인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쓰러진 상처를 앉고 오랫동안 혼자 살았던 도종환 시인
소름이 돋우며 솜털이 솟는 듯한 감성의 시어들,, 접시꽃 당신
그 접시꽃이 삼척항 가파른 언덕 나릿골 마을에도 활짝 피었다
왠지 나릿골 마을 골목에서 만난 접시꽃 당신은 어느덧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과 닮아 가는 듯했다
'길 위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게 웬 미역 풍년? 삼척 갈남항, 신남항 해신당공원 민박 펜션 연탄 생선구이 (28) | 2024.07.08 |
---|---|
삼척 중앙시장 맛집 오구사 식당, 곰치국 달라 했더니(삼척항 수산 회센터 민박) (29) | 2024.07.04 |
십이지상, 노사나불 좌상 있다? 두타산 삼화사 적광전(동해시 무릉계곡) (24) | 2024.06.30 |
내가 본 가장 한국적 고갯길, 소백산 마구령 고치령(정감록 십승지 단양 의풍리) (27) | 2024.06.22 |
봉화 들판 도예가와 영주 무섬마을 카페, 꽃은 피고 물은 흐르고(라이브 카페) (12) | 2024.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