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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풍경, 07~17년 이야기

수몰촌 이야기! 충주댐 완공 수몰된 구단양, 제천 청풍호 마을 한수 명오리 고가

by 비단왕 2024. 6. 8.

이 포스트에 사용된 사진들은 2014년 7월에 촬영된 사진들임을 알려드립니다 

 

충주댐 - 충주시 동량면

 

1985년, 충주댐 완공으로 구단양과 제천 청풍마을 일부가 수몰되었다 

철거민들은 신단양으로 이주했고, 구단양은 단성면으로 개칭되었다 

현재 단성면의 인구는 천 명 남짓으로 신단양의 10분의 1 정도이고 

기차도 더 이상 다니지 않지만 얼마 안 남은 주택들만이

이곳이 과거 단양 군청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충주댐 - 충주시 동량면

 

댐의 높이는 97m, 제방길이는 460 여 m, 총 가용저수량은 27억 5천만 톤이라고 한다.

33억 8000만 톤의 각종 용수를 수도권에 공급하고 또한 홍수조절 역할도 한다.

 

충주댐 - 충주시 동량면

 

이 충주댐 완공으로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 일대가 수몰되었다 

특히 제천시 청풍면과 구단양의 경우 소재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이 수몰되어 이전을 했다 

 

제천 청풍호에서는 충주댐 완공에 따라

제천의 3개 시군, 7천여 가구 4만여 명이 물속에 고향을 두고 실향민이 되었다 

보상금을 받고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고향을 떠나기 싫은 사람들은

주변으로 이주해 새로운 마을을 형성했다 

 

충주댐에서 바로본 충주호
충주호 완공 1986년 전두환 기념비

 

서슬이 시퍼런 제5 공화국 전두환 시절 

수몰촌 사람들은 머리에 빨강띠를 두르고 시워 한번 하지도 않고

자그마한 보상을 받고 그냥 순순히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보상이 왜 이것밖에 안 되냐? 

도대체 어느 놈들이 부동산 감정 평가를 이따위로 했냐? 

감정 평가 요원들, 주택 줄입금지,,, 출입 시 법적 조치 하겠음,,, 

이런 푯말을 대문에 척 붙이고 문을 걸어 잠갔을 텐데

이들은 작은 보상에 아무 반항도 하지 않고 정부 시책을 순순히 따랐다고 한다 

피해는 이 지역 사람들이 보고 공은 5 공화국 전두환과 그 일당들이 가져간 것이다 

 

한수 명오리 고가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한수면 송계계곡 한송초등학교 옆에 자리하고 있는 한수 명오리 고가는

1981년 충청북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한수면(寒水面) 명오리(鳴梧李) 고가(古家) 

한수는 물이 차갑다는 이야기고 "명오"는 벽오동 나무가 운다? 

그러니까 이 동네는 물이 아주 차가웠고 벽오동 나무가 있었으며 벽오동은 늘 울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명오리 고가"라고 하니까

옛날 명월이들이 살던 술집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데 

한자에서 보다시피 명오리의 "명" 자는 울 "명" 자이고 "오" 자는 벽오동 "오" 자이다 

그러니까 물속에 잠기기 전의 명오리 마을은 오동나무가 많았던 마을이지 않았을까? 

 

한수 명오리 고가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관리 차원에서 살고 있는 듯했다 

이 가옥은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가까이 있어 거의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ㄱ자형의 안채는 안방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이 있고

오른쪽에 윗방이 있으며 대청과 건넌방이 달려 있다.

 

한수 명오리 고가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ㄴ자형의 사랑채는 북쪽으로 사랑방이 있고 서향 하여 대문이 있으며,

남쪽으로 사랑방 · 외양간 · 방앗간 그리고 고방 등이 연결되어 있다.

이 주택은 후기 조선시대 이 지역 가옥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그 의의가 있다.

 

한수 명오리 고가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그러니까 한수 명오리라는 마을은 1983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모두 물속에 잠겼던 마을이다 

당시 물속에 잠겼던 마을은 제천시 한수면뿐만 아니라

충주댐에서 구단양까지 약 50Km가 넘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모두 물속에 잠긴 것이다 

50Km면 100리가 훨씬 넘는 거리다 

그 100리가 넘는 남한강변 마을이 모두 저런 식으로 물속에 잠겨버린 것인데

구단양은 읍내 전체가 모두 물에 잠기고 일부만 남아 있다  

 

월악산 송계계곡에서 바라본 한수 명오리 고가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명오리 고가 오른쪽에 있는 기와집은 조선 순조 때 이조 판서를 지냈던 김세균 판서의 고가이다

원래는 한수면 북노리에 있었다고 한다

제천 북노리 마을 역시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물속에 잠기자 일부는 충주로 옮겨지고

일부는 송계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충주댐 완공으로 생긴 거대한 호수(충주호)가 된 남한강

 

1983년, 충주댐 완공과 함께 남한강 강변 마을이 모두 물속에 잠겼다 

때문에 이런 광활한 충주호를 바라보면서 "참 환상적인 풍경이다"라고 감탄을 하기 전에

저 물속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을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월악산 송계계곡 옆으로 옮겨진 한수 명오리 마을과 김세균 판서의 고가도

저 광활한 호수 속 어딘가에 잠겨 있을 것이다 

 

거대한 호수가 된 충주 동량면

 

다음 카카오 스카이 뷰로 본 충주댐 완공 충주호 수몰지역

 

이 카카오 스카이 뷰 사진 가장 왼쪽이 충주댐이고 가운데 부분은 단양 장회나루와 구단양이다 

그리고 사진 오른쪽 위쪽은 제천 청풍호 마을 한수면이다 

충주댐 완공 당시 이 저역 대부분의 마을들이 물속에 수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