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트는 예전 강릉 남대천 단오제 때 했던 포스팅이었는데요
어느 카페서 스크랩해 간 날짜를 보니 2007년 08월 16일로 되어 있었더군요
강릉 단오제는 해마다 5월 말에서 6월 중순 사이에 했으니까
이 포스트는 2007년 6월 중순에 했던 포스트로 단정 지었습니다
이 포스팅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에 비단왕도 깜짝 놀랐네요
6월 16일 토요일,
강릉 단오장에 가려고 경기도 오산을 출발하여 영동 고속도로를 3시간 동안 달려
강릉 시내로 들어오니 강릉 남대천 주변은 단오 행사 준비로 포장치고
좌판을 깔고 있는 장꾼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멀리 백두대간 준령인 대관령을 뒤로하며 숙소인 경포대 펜션에 도착하니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고 강릉 강문 해수욕장 해변은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해수욕철이 되지 않아서인지 해변에는 가족끼리,
또는 연인들끼리 어슬렁 거리는 커플들만 간혈적으로 눈에 들어올 뿐
해수욕장 주변은 대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였습니다
강릉 단오제 행사장에서 근 10일 동안 있었지만
새벽 일출을 한 번도 사진에 담지 못했네요
새벽 1시쯤 들어와 소주 몇 잔 마시고 그대로 거꾸러지면 아침 8시,
아침밥을 먹으며 해장술로 소주 한 병 마시면 아침 9시가 되고
곧바로 강릉 남대천 단오 행사장으로 가면
또 새벽 1시나 되어서야 들어오기 때문이었죠
2007년 6월 17일 일요일부터 6월 24일 일요일까지 강릉 단오제 행사가 있었는데요
이때는 강릉 단오굿을 비롯, 대관령 산신제, 강릉 농악, 관노 가면극, 오케스트라 연주,
경찰 악대, 씨름대회, 그네 뛰기, 널뛰기 대회, 창포물 머리 감기 등,
단오제 행사가 한 참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강릉 남대천 가장 동쪽 끝 행사장에서는 뱀장수, 각설이 엿장수, 쥐약장수, 무좀약장수,
옷장수 벙거지 장수, 메리야스 팬티 장수, 80년 전통의 동춘서커스, 메밀국수,
수수부꾸미, 오징어순대, 동동주 감자전 장수 등이
단오제 관광객들을 상대로 부산하게 난전을 펼치고 있었죠
그중, 단오 이불장 난전은 행사장의 가장 후미진 동쪽 끝,
각설이 엿장수 패들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단오 이불장 난전을 하기 위해 단오 행사 이틀 전부터 포장치고 좌판을 깔아
장사 준비하는 기간만도 이틀이 걸리고요
장사 시작하면서 끌어들인 이불만도 5톤 화물 박스차로 4대 불량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불장을 하기 위해 강릉까지 불러들인 인원만도 7~8여 명이나 되었죠
웬만큼 팔아서는 적자를 면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단오제 이불 난전들은 작년보다도 훨씬 많은
약 20여 개 팀이 좌판을 펼치며 각축을 벌이고 있었죠
강릉 단오장 행사는 예부터 명성이 자자한 장터입니다
그리고 강릉 단오 이불 난전은 서울을 비롯, 강릉, 속초, 주문진, 동해시, 삼척, 태백 등,
강원도 일대의 사람들이나 펜션, 여관업, 민박집들까지 이불을 사기 위해
그야말로 이불 난전은 일주일 내내 문전성쇠 북새통이 되곤 했습니다
전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유명 이불 메이커들도 꾸역꾸역 몰려와
그야말로 강릉 단오 이불장은 전북 이불장의 축소판을 방불케 할 정도죠
하지만 이번 단오 이불장은 시작부터 이상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구경온 사람들은 아침부터 새벽시간까지 무리를 지어 하루 온종일 몰려다니고 있었지만
먹고 마시고 헬렐레 ~~~ 하다가 심심풀이로 이불값을 물어보고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단오 이불 난전 철수하기 이틀 전부터 엄청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단오장 마지막 날에는 이불을 사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이불 좌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기에 이르렀고
다음 날 좌판을 걷고 철수를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불 좌판은 그야말로 이판 사판 공사판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있을 때 사러 오지 왜 철수하고 있는데 와서 난리들을 치는지,,,
여하튼 철수하는 날 이불을 사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이불장은 한동안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결국 얼마 팔지 못하고 철수를 하고 말았네요
행사가 끝나면 단오 행사 주최 측에서 포장 철거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단오 행사 첫날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대로 많은 사람들이 단오 이불장을 북적이며 돌아나니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불값을 물어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갈 뿐이었죠
하지만 난전 아저씨들은 알고 있습니다
첫날이나 둘째 날은 저렇게 묻기만 하고 지나가지만
셋째 날 정도 되면 몰려들어 철수하기까지 한꺼번에 벌떼처럼 몰려든다는 것을,,,
이제 강릉 단오 이불장을 찾는 이들도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철수하기 바로 직전에 오면 모든 이불들을 아주 싼 값에 가져갈 수 있는 사실을,,,
이러니 아무리 맘에 드는 이불들이 눈앞에서 유혹을 한다 하더라도
그저 묵묵히 때를 기다리면서 쉽사리 물건을 사 들고 가지를 않네요
"조금만 참자! 조금만 참고 있으면 저것들이 철수하게 될 것이고
그때쯤 되면 더 싸게 주니까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 보자!
세월이 좀 먹나? 모래알이 썩나?
저것들 물건 가져온 것 보니 산더미처럼 쌓였구먼,, 한 달 후에 와도 상관없겠다"
이렇게 되면 강원도 아짐들이 전국을 무대로 행세께나 한다는
명성 있는 이불 장수들의 머리 위에서 느긋이 앉아 놀고 있는 거 아닌가요?
이불 난전을 펼쳐놓은 첫날부터 아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이제 장사가 본격적으로 터지나 보다 싶었는데요
오픈게임 선수들이 게임을 하기에 앞서 탐색전을 벌이는 것처럼
이리저리 탐색만 하다가 대부분 그냥 가는 거 있죠?
젠장! 단오제 첫날 이백만 원도 채 못 팔다니,,,
아무리 첫날이라지만 지금까지 강릉 단오제 와서 하루 이백만 원 못 판 적은 없었는데요
이번 단오 이불장은 출발부터 뭔가가 심상치 않는 변화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단오제의 다른 이불 난전들은 우리가 팔은 이백만 원의 반절 정도밖에 못 팔아 놓고 있는 거 같았습니다
여덟 명이라는 인원 동원에 그 여덟 명의 인원들이 먹고 마시고 숙박하는 비용과 일당,
그리고 5톤 박스트럭 네 대 분량의 이불과 비싼 자릿세를 감안한다면
이백 만원 판다는 것은 곧 "나 망했습니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날 밤은 밤 10시경에 장사를 접고 승합차에 탑승
동해 해변 경포대 펜션에 도착, 모두들 그대로 거꾸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스물여섯 살이라 하고 볏산은 스물두 살이라고 하는데요
스리랑카 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잘 먹자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이미 반쯤은 한국인이 되어
소주도 조금씩 마시고 고기와 김치도 조금 먹는 편이었죠
그래도 고기보다는 김치를 훨씬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식사 시간이면 고기보다는 김치를 선택하여 먹곤 했으니까요
스리랑카 애들이 좋아하는 것은 카레라이스 같은 음식들인데요
단오장 난전 주변의 음식점들은 고기와 회, 그리고 술뿐인 걸 어쩌겠습니까?
부모 형제와 이별하고 돈 좀 벌어보고자 이역만리 타국까지 왔으면
잘 먹고 잘 마셔야 건강도 유지할 수 있고, 돈도 벌어서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스리랑카로 돌아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비즈니스 사업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요?
이 애들은 한국에 온 지 약 1년 정도 된다고 하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은 2년 정도 한국에서 돈을 더 벌어 스리랑카로 돌아가
비즈니스 사업을 하는 게 꿈이라고 하더군요
사실은 고국 스리랑카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가 둘 있다고 하니 삼형제고
볏산은 고향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하니 이 형제인 것이죠
사실은 어머니가 50살이라고 하니 24살에 시실을 낳은 것이고
볏산은 어머니가 62살이라고 하니 40살에 낳은 것입니다.
그리고 둘 다 스리랑카 콜롬보에 산다고 하네요
이 애들은 송탄 이불공장에서 일을 하는 애들인데요
강릉 단오장에서 물건 상 하역 작업, 좌판 작업, 포장 작업 등에 며칠 써먹으려고
일부러 송탄 이불공장에서 빌려온 애들이죠
시키면 시키는 대로 꾀 한 번 부리지 않고 일은 잘하더군요
다만 아침에 욕실에 한 번 들어갔다 하면 함흥차사인 것이 문제였죠
이 애들은 아침에 욕실에 들어갔다 하면 30분 이상 있어야 나오니
두 놈이 번갈아 가며 욕실에 한 번씩 들어갔다 하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남대천 단오장을 펼친 곳에 빨리 가기는 해야 하는데 욕실에 한 번 들어갔다 하면
아예 나올 생각을 안 하니 이거이 사람 미치고 환장,,,
물 귀신이 붙었는지 물만 보면 정신 못 차리고 환장하니 나도 같이 환장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한 번은 애들이 목욕을 하고 나오는데 불러서 점잖게 잔소리를 좀 했죠
"헤이! 시실! 볏산!"
이렇게 부르니 이 애들은 또 무슨 일을 시킬 것 이 있어서 부른 줄 알고
귀를 쫑긋 세우고 실실 웃으면서 주의를 집중하여 치어다보네요
이 애들 누가 부르기만 하면 늘 먼저 실실 웃는 버릇이 있는데요
그 이유는 "나는 그대들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항상 우호적이니 사이좋게 지내자"
이런 뜻이 숨어 있는 듯했습니다
"시실! 볏산! 컴 히어!. 홧 타임 이즈잇?"
"엣 나인 어클라크"
"워타임? 피프틴!"
이렇게 손짓 발짓 다 떨어가며 이야기를 했더니 시실이 또 실실 웃으면서
"샤워시간 십오 분? 오케이... 오케이..."
"어쭈구리, 이누마들 한국말 제법 잘 알아 묵네"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하에 36년간 끽소리 한 번 못하고 있을 때
스리랑카도 영국 지배하에 더 오랜 세월을 있었기 때문에 영어는 좀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두 눔이 한꺼번에 욕실로 들어가서 사이좋게 사워를 하고 나오더니
"싸장님! 샤워, 15분 해써요오"
"잘했어! 오케이! 어서 가자! 레츠고우 ~ "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앞장서서 각설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걸쭉하게 한 곡 뽑았죠
테레비 넥타이를 목에 두르고
집신 신꼬 걸어가는 멋쟁이여
유리 없는 앤경에다 사팔뜨기다
도야쥐 같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자
랄랄라 ~
마악껄리두 한잔, 소주도 한잔..."
이렇게 각설이 노래를 한 곡 뽑으며 앞장서 가고 있는데
뒤에서 시실과 볏산이 또 실실 웃으며 한 마디 하더군요
"싸장님 쏭! 굿 굿! 베리굿!"
"쏭은 뭔 노매 쏭이냐? 그지들이 다 떨어진 신발 신고 가면서 부르는 노랜디,,,"
이렇게 시큰둥하게 말을 하자 이 애들이 뭔 이야긴지 감을 잡았는지
"싸장님 쏭... 마니 마니 ... 재미있어요"
"염병! 재미있기는... 그지들 부르는 노래 라니까...
"그렇게 시큰둥하게 이야기를 해도 이 애들은 그저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샤카모니(석가모니)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스리랑카 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장사를 마치고 새벽 시간에 이눔아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좀 하다 보니
샤카모니(석가모니)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내가 석가모니에 대하여 몇 마디 했더니, 시실과 볏산이 두 눈을 번쩍이며
매우 반가운 기색을 하면서 다시 역으로 물어 오는 거 있죠?
"쌰장님! 샤카모니... 잘 알아요?"
"샤카모니(석가모니) 잘 알지. 원래 샤카모니는 네팔 피이플 아닌가?
인디아... 노우쓰... 네팔... 샤카모니... 우리 코리아 사람들은 부처님이라고 하지"
"우리 스리랑카 싸람들... 샤카모니 좋아해요"
"우리 코리아 사람들도 샤카모니... 굿 굿... 베리굿,,,
스리랑카 출신의 월플라 라훌라라고 하는 스님이 있는데 굿,,, 굿 베리굿 원더폴 스님이여...
월폴라 라훌라 스님... 월더폴~~."
약 십오 년 전에 스리랑카 출신의 월폴라 라훌라 스님이 저술한
"붓다의 가르침 " 이란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요
반야심경에 나오는 "사성제"와 12 연기에 대하여 그렇게 적나라하고 체계적이고
간략하게 설명을 한 책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사성제는 구마라습이 번역한 반야심경에 나오는 260 몇 자중 네 글자로 되어 있는데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과 12 연기(十二緣起)와 함께
불교의 핵심적인 문구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사성제는 고집멸도(苦集滅道) 이렇게 간략하게 네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스리랑카 출신 월폴라 라훌라 스님은 고(苦)에 대하여 세 가지로 분류하여 이야기했죠
그 세 가지의 괴로움은 일상적인 괴로움이 있고, 변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괴로움이 있고,
조건 지워진 상태에서의 괴로움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괴로움이란 고통으로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
즉 태어남, 늙음, 병듬, 죽음, 싫어하는 사람이나 상황과의 만남, 좋아하는 사람이나 상황과의 이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 슬픔, 비탄, 근심 걱정 등이죠
두 번째, 변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괴로움이란 삶에 있어서 행복한 느낌이나 조건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조만간에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하는 과정에서 고통, 고난, 불행 등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 조건 지워진 상태에서의 괴로움이란, 존재, 개체, 혹은 자아라고 불려지는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질적, 정신적 힘이나
에너지의 결합체를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간략하게 설명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오온(五蘊)의 색(色) 수(水) 상(想) 행(行) 식(識)에 대하여
설명을 들으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여하튼 스리랑카 출신의 월폴라 라훌라 스님이 저술한 "붓다의 가르침" 이란 책은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사실에 가깝게 전하고 있는 팔리어 경전을 바탕으로 해서
영어로 쓰인 책인데요
사성제, 12 연기에 대하여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체계적으로 간략하게 설명을 한 책입니다
번역은 진철승인가...? 하는 사람이 한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샤카모니와 스리랑카 출신 월폴라 라훌라 스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시실이 눈을 반짝 빛내면서 물어보더군요
"코리아 싸람들... 샤카모니 좋아해요?"
"고럼... 코리아... 크레이지 도그 들도... 샤카모니... 굿... 베리굿"
"코리아 크레이지 도그? "
시실과 볏산이 의아하게 쳐다보며 반문을 하기에 같이 있던 수원 아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쏴람... 크레이지 도그..."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시실과 볏산도 황당한지 실실 웃던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멋쩍게 웃더군요
이런 서투른 삼류 연극 같은 해프닝을 바라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턱이 어긋날 정도로 한 바탕 웃고 영문을 모르는 시실과 볏산은 어리둥절 뒷 머리만 긁적이며
강릉 강문 해수욕장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다음날, 스리랑카에서 온 얼라들 왼쪽은 시실, 오른쪽은 볏산
숙소인 경포대 펜션에서 아침 먹고 강릉 남대천 단오장 이불난전으로 돌아와
포장 올리고 좌판을 펼친 다음, 청주에서 올라온 이불솜 한 차를 하역,
잠시 쉬고 있을 때 사진 한컷 찍었네요
이 애들은 똥털(별명 똥털)이 운영하는 이불 공장에서 솜도 틀고
킬딩도 하고 포장작업도 하는 애들인데요
강릉 단오장에서 물건 상하역 작업 등,
잡일을 시키는데 써먹으려고 빌려온 스리랑카 출신의 애들이네요
궂은일이나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도맡아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꾀 한 번 부리지 않고 잘하는 편인데요
일 하는 동작은 좀 느린 편이었습니다
스리랑카나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무더운 적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일 년 내내 계속되는 무더위와 풍토 탓인지
모든 전체적인 생활 리듬이 느린 편이었지만, 기질은 낙천적이고 성실하며 순수하더군요
처음에는 묻는 말 외에는 거의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맡은 일만 묵묵히 하면서 침묵으로만 일관하던 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리랑카 사람들이 좋아하는 샤카모니(석가모니)와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들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시큰둥한 농담 한 마디 던졌더니,
그 후부터는 나에게 먼저 말도 걸어오고 또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더군요
한 번은 단오장 이불 난전이 시작된 지 삼일째 되던 날인가 하던 날에
시실이 머뭇거리며 더듬더듬 한국말로 무엇인가 물어 오고 있었습니다
"샤장님!"
"어? 시실! 뭔 일이야?"
"샤장님! 우리 ,,, 언제... 공장에 가요?"
우리가 아무리 신경 써서 잘해 준다고 해도 이 애들은 첨 보는 낯선 한국사람들과 같이 먹고,
같은 잠자리에 들면서 같이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나 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불편한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 해 오던 애들이었죠
30도를 오르내리는 강릉 단오 행사장의 무더운 날씨도 힘들었겠었지만,
무엇 보다도 낯선 사람들과 낯선 풍경과 낯선 풍토에 적응하려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오늘... 투데이... 송탄 매직베드 싸장 있지" "
"네... 매직베드 싸장님!"
"송탄 매직베드,,,. 3인치 이불 싸장... 투데이 이브닝... 여기로 컴 히어"
"..............."
"그러니까... 오늘... 투데이,,, 아니면... 내일 목요일,,, 더즈데이"
"..............."
"송탄 매직베드 싸장하고... 차 타고... 부릉부릉 ~ 부르르르릉 ~ 끼이이익 ~ 하면서
송탄 이불공장에... 먼저... 가게 될 거야"
"매직베드 싸장님,,, 오늘,,, 이브닝,,, 여기 온다고 했어요?"
" 오늘,,, 투데이 이브닝,,, 송탄 매직베드 싸장... 컴 히어"
그제야 알아들은 시실과 볏산의 얼굴에는 안도의 한숨과,
아쉬움의 한숨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는 듯했으며, 연신 멋쩍은 웃음만 지으면서
멍청한 표정으로 치어다보고만 있었습니다
결국 시실과 볏산은 그날 저녁, 송탄 매직베드 사장 차를 타고 가면서,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며
손을 흔들더니, 이제 강릉 단오장 남대천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대관령을 넘어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자신들의 생활 터전인 송탄 이불공장으로 갔던 것이죠
그 애들이 가고 난 뒤에도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나르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시실과 볏산은 자신들이 일하고 있는 송탄 매직베드 공장으로 돌아가고,
이제 송탄 이불 아저씨와 우리 일행 6명은 이곳에 남아서,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와 씨름을 계속하고 있었죠
다음날 강릉 단오제 행사장
이곳은 단오장 이불 난전이 펼쳐진 가장 동쪽 끝에 있는 먹거리 장터이인 데요
바로 이 앞에서 각설이 엿장수들이 구경꾼들에게 사정없이 엿을 먹이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제 단오 이불장이 있는 강릉 남대천에도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으며
각설이 엿장수들의 엿 먹이기 작업도 한층 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과일주스와 찰 옥수수를 파는 바로 그 옆 자리에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요
그 앞에는 우리 일행이 난전을 펼쳐놓고 이불을 팔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가서 좀 거들어 주려고 가까이 가 보았더니
어디서 물려왔는지 갑작스레 사람들은 엄청 몰려있었죠
그야말로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하는 인간 시루,,,
때는 이때닷! 하고 난전 아저씨는 뭐라 뭐라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불을 펼쳐보고 뒤집어 보고 만지작 거리며 허겁지법 물건을 고르고 있었죠
바로 이 아저씨가 전국의 장바닥을 20년 이상 돌아다니며
모조리 평정을 하고 다녔다는 전설의 장사꾼인 동시에 경기, 충청지역에서도 신출귀몰,
장바닥마다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다는 공포의 장꾼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날도 공포의 장꾼은 아침부터 소주 한 병, 점심때 한 병, 도합 두 병 이상을 퍼마시고
그 저녁 무렵부터 어두운 밤에 올 때까지 사람들을 향햐여 외치고 있었습니다
"자! 골라 골라! 신경질 나게 싼 거! 너무 싸서 신경질 나!
오늘 여기 있는 물건 깡그리 몽땅 팔고 갈겨!
와서 덜 줏어가! 와서 주워 가라는데 왜 덜 그냥 그는 겨?"
이렇게 냅다 소리를 질러대면 지나가는 아줌들이 화들짝 놀라 한 번씩 다 쳐다보며 지나갑니다
어떤 아줌은 킥킥 거리며 한참 들여다보고 가고 또 어떤 아줌은 이것저것 만지작 거리며
뒤집어 놓고 그냥 가기도 하고 또 어떤 아줌은 한 장 사 들고 가는 아줌들도 있었죠
"여름 패드는 한 장에 사천구백 원! 다른 데는 다 오천 원씩 팔아!
다른데 다 돌아다녀봐! 내 말이 거짓말인가?
여기는 사천구백 원에 팔아! 사천 구백 원! 사천 구백 원!"
이렇게 외치니까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발걸음을 멈추고 키득키득 거리며
도대체 사천 구백 원짜리 패드가 뭔 물건인가?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하네요
그러고는 오천 원 받고 백 원 거슬러 주는 해프닝이 밤새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오천 원 내고 킥킥 거리며 백 원을 거슬러 가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사천 원에 한 장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도 있었죠
"깎으려면 옆집에 가서 깎어! 여기는 깎으면 안 팔어! 가~~ 옆집으로 가서 깎어!"
그래도 안 가고 계속 진드기처럼 들러붙어 찐짜 붙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안 팔어 안 판 다니까 왜 자꾸 그러는겨! 옆집으로 가! 환장하겠네!"
한 참을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은 오천 원을 내고 백 원을 거슬러 가네요
이 사람들, 가라고 해도 안 가고 찰거머리 마냥 들러붙어, 삼십 분 이상을 졸라 댑니다
그러다 기어이 천 원을 깎아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저씨 고마워,,, 내가 내일 사람들 많이 데리고 오께"
"내일은 오지 마! 제발 좀 오지 마! 징그러 죽것서!"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또 자기들끼리 킥킥 거리며 웃어대고 있었고
장터는 또 한 번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각설이 엿장수 공연이 끝나고 엿 먹을 시간이 되자,
허겁지겁 36계 줄행랑을 치며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는 사람들
한참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떠들어 대던 이불 아저씨가 지쳤는지 목청을 가라앉히고
휴전을 하고 있는 듯했으며, 이번에는 비단왕이 나서서 한 바탕 떠들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워디로 가는겨! 일단 와바! 그냥 와서 가져가라는데 왜 덜 그냥 가?"
이렇게 냅다 소리를 지르면 실실 웃으면서 뒷걸음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불을 만지작 거리며 한 장 집어 들고 흥정을 해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거 여름 이불 얼마라니?"
"이만 원 짜리 만원에 가져가! 살려면 사고 말려면 사!"
이 말을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어떤 아줌이 나의 말을 따라서 한 번 해보더군요
"살려면 사고 말려면 사? 말 된다, 말 돼!"
하면서 혼자 킥킥 거리며 웃더군요
"이거 오천 원에 안되나?"
"그냥 놔두슈! 오천 원에 팔려면 내가 가지고 가서 솥에 넣고 삶아 묵을겨!"
"이불을 삶아 먹는 다니? 삶아 먹을 거면 싸게 하나 줘!"
"냅뒤요! 그렇게 팔려면 내가 집에 가지고 가서 소금 찍어 묵는 다니까"
지나가다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실실 웃으면서 구경하고 있더군요
오천 원에 한 장 달라고 진드기 마냥 찐자를 붙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또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쪼가리 이불 한 장 들고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아 ~ 이것은 무슨 이불이냐?
이불공장 개똥이가 이불 만들다 뿔따구 나서 반쯤 싹둑 잘라먹은 이불이여!
어따 쓰느냐?
밤에 꽃 같은 마누라를 옆에 두고 기운 없어 비실 비실 하시는 분!
한 장 같다 덮어봐! 끝장 나부려!
자! 이 눔은 또 무신 이불이냐?
이불공장 쇠똥이가 바느질하다 신경질 나서 반쯤 베어 먹은 이불이여!
워따 쓰느냐?
양기가 부족하여 뒷골이 당기고 온몸에 기운이 쭈욱 ~ 빠지고
오줌이 두 갈래 세 갈래로 나오시는 분!
한 장 같다 덮어봐!
소변볼 때 화장실 변기가 팍팍 뚫려버려!
자! 이것은 또 무신 이불이냐?
변강쇠 이불이여! 변강쇠 이불!
일천 이백 원 짜리 버스를 타고 가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시는 분
한 장 같다 덮어봐!
즉빵 해결 되부려!
내 말이 거짓말이면 이불 열짱씩 공짜로 주겠어!
자! 이 신비의 이불 한 장 얼마냐?
구천 구백 원이여! 구천 구백 원!
구천 구백 원이면 포장광어 한 마리 값 밖에 안되는겨!
구천 구백 원! 이래도 안 사?
환장하것눼!
그럼, 에라 ~ ~ 오천 원이다 오천 원 ~
따악 열 장만 오천 원이여!
선착순 10명 오천 원!
오천 원이라고 하는데도 만지작 거리고 있어?"
목에 힘줄이 튀어나오도록 고함을 질렀더니 어디서 몰려왔는지 벌떼처럼 몰려온 사람들
여기서도 저기서도 서로들 가져가려고 몸싸움이 한창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불 한 장을 서로 잡아당기며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리고 한꺼번에 정신없이 물어보기 시작하더군요
"이거 얼마 라니?"
"나 좀 안 깎아주나?"
"이거 오천 원에 하나 그냥 줘!"
"천 원만 깎아주면 안 되나?"
말끝이 튀껭이꼬리 마냥 돌돌 말려 올라가는 듯한
강릉 특유의 사투리에 웃음이 절로 나기도 하더군요
"자! 지금부터 한 사람씩 차례대로 말씀들 하셔!
한꺼번에 말씀들을 하니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어!
그러면서 허겁지겁 몇 장을 팔아먹고 있을 때 이불 난전을 펼친 곳
저쪽 편에서는 송탄 이불 아저씨가 또 한 바탕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싹 가져가! 여기 있는 물건 다 가져가!
내 오늘 여기 있는 물건 깡그리 몽땅 다 팔고 갈겨! 그냥 막 줏어가!
만져볼 땐 만원, 가져갈 땐 공짜여!
근디 엿장수 구경하고 엿 먹을 시간 되면 엿들 먹고 가야지 왜 덜 그냥 도망 가는겨?"
그랬더니 몇몇 아줌들이 들고 있는 엿을 보여주며
"나 엿 먹으며 가는 거라니? 이거 봐! 엿 두 판씩이나 샀대요!"
그러면서 지나가다 말고 이것저것 만지작 거리더니 그냥 가고 있었고
송탄 이불 아저씨는 만져 보고 그냥 가는 아줌들 패거리들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러 대더군요
"만졌으면 만진 값 주고 가야지?"
이 말을 듣던 어떤 아줌들은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더니,
뒤돌아 보고 킥킥 거리며 가고 있었고, 또 다른 아줌들이 한 무더기로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좋다! 여기 쪼가리 이불 하나 남은 거, 이천 원 주께 가져가! 이천 원이면 엿 값 밖에 안 되는겨!"
이렇게 해서 그날은 소주 몇 잔 마신 김에 이 판 사판 떠들어 대며 장사를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 가고 있었고,
야심한 밤에 또 한 번 사람들은 엄청 몰려들고 있었지만
이날은 맨 싸구려 이불들만 팔렸네요
다음 날은 점심 무렵이 되었을 때쯤 사람들이 몰려들어 물건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가져갈 때는 돈 내구 ~ 구경은 공짜여! 골라! 골라! 막 골라! 인정사정없이 막 골라 버려!
그냥 신발 벗고 올라와서 맘대로 골라! 이불 질겅질겅 밟고 다녀도 괜찮여!"
이렇게 외치면 어떤 사람들은 반으로 뚝 잘라 달라고 버티는 배짱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지갑을 열어 보이며 택시비 없으니 차비나 빼달라고 달라붙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뭐라고라? 차비가 없다고? 차비 빼달라고?
강릉 사람들은 모두 차비도 안 가지고 다니나?"
한 사람이 차비가 없다고 하면 너도 나도 몽땅 차비가 없다고 달라붙고 있으니
그저 어처구니가 없어 입만 딱 벌리고 있을 뿐이네요
"어제 이거 2만 원 주고 사 갔는데 오늘은 만오천 원 이라니?"
어제 2만 원 주고 이불을 사갔던 사람이 오늘 다시 와서 보니
자기가 산 것 하고 똑같은 물건을 만오천 원에 팔고 있는 것을 본 모양입니다
"어제 것은 이상 없는 정품이고 지금 파는 것은 조금 오염이 돼서 그냥 주는 거요"
강릉 단오 이불장은 어제 왔던 사람들이 오늘 또 와서 이불을 사 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종종 자주 일어나는 편이죠.
"이거 오천 원에 안되나?"
"그냥 놔두슈! 오천 원에 팔려면 내가 가지고 가서 삶아 묵을겨 "
토껭이 꼬리처럼 돌돌 말려 올라가는 강원도 특유의 사투리가 왠지 웃음이 절로 나오게 만드네요
초롱하던 별들도 비구름 속으로 모두 자취를 감추어 버린 지금
이날 내가 만났던 막무가내 아줌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들을 하고 있을까?
하루 종일 장맛비는 오락가락
숙소에서 밖으로 나오니 비바람에 풀잎 스치는 소리가 들리네요
이날 내가 낮에 만났던 막무가내 아줌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슨 꿈들을 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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