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천안에서 장항까지 어어지는 145Km 구간의 약 30여 개나 되는 장항선 역사들이 폐지되거나
아니면 위치를 옮겨서 새 건물로 새롭게 탄생되었다
이중 가장 먼저 폐역이 된 모산역과 2008년부로 열차의 기적소리마저 끊긴
신창역, 학성역, 도고역, 삽교역, 화양역, 홍성역 등을 사진에 담아봤다
철도청 자료에 위하면 장항산은 1922년 6월 4일 장항선(당시엔 충남선)은
천안에서 장항까지의 구간 중 천안 - 온양간 약 15Km를 가장 먼저 개통시켰고
곧이어 145Km 장항선 전 구간을 개통했다
그러니까 장항선은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시작하여 지금 현재까지 약 90년 동안 이어오던 민족철도였다
이들 역사들은 지난 2008년부로 모두 폐지되거나 위치를 옮겨 새로 신설되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폐지된 장항선의 옛 역사들을 모산역에서부터 홍성역까지 차례대로 올려 볼까 한다
이곳은 아산시 배방읍(당시 배방면)에 자리 잡고 있는 모산역 매표소와 역 대합실 모습이다
장항선 역들 중 가장 먼저 폐쇄된 모산역
2007년 3월까지는 열차표를 팔았으나 2008년 당시 모습은 텅 비어 있어
다 부서지고 깨지고 박살내고 스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산역은 천안을 출발, 장항까지 가는 장항선 열차의 첫 번째 역으로서 1922년에 세워진 역이다
하지만 천안 아산 고속철도역에 아산 신역사가 신설되고 천안 - 아산 간 선로가 변경되자
결국 2007년 3월 말일부로 장항선 역들 중 가장 먼저 폐쇄되었다
아산시 배방읍(당시 배방면) 모산역 부근에는 지금 현재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과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래서 급격하게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모산역은 고층 아파트와 고층 상가들에 포위되었다
그렇게 1년 이상을 홀로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하루에 상하행 한 편씩 정차했던 모산역 열차 시간표가 떨어져 나가고
모산역은 2Km 정도 떨어진 8차선 대로변에 배방역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역이 신설되었다
하지만 수도권 전철만 정차하고 장항선 열차는 새로 신설된 아산역과 온양온천역만 정차한다
옛날은 이렇게 끈질긴가 보다
역사는 헐려도 여객운임표는 공구통이 되어 따라오고 있으니,,,
안성선이라,,,?
안성선이 있었던가?
아! 그렇지!
충남 천안역에서 경기도 안성까지 가던 열차가 있었지
기분이 우울한 날에는 하릴없이 천안역으로 달려가 무작정 안성 가는 기차를 타곤 했었지
그때 기차표를 얼마를 주고 끊었더라?
아! 280원이었구나!
아니 이 요금은 모산에서 안성까지 요금이니까 천안에서는 200원쯤 했었겠구나
돌아올 땐 200원 기차비가 없어 안성에서 천안까지 60리나 되는 철길을 터덜터덜 걸어왔던 기억이,,?
요즘은 아무 때나 생각나면 자동차로 쉬익~~~ 가는 안성!
당시는 왜 그리 멀어 보이고 또 이국적 모습으로 보였던지,,,
안성선은 천안역- 성거역 - 입장역 - 미양역 - 안성역 간 약 30Km 구간을 왕복하던 기차였으며
1980년도 중반까지는 기차가 하루 서너 차례 씩 다녔었다
철도청 자료에 위하면 일제가 한창 진행 중인 1925년도에 완공되어 1985년도까지 운행했다고 하니
안성선도 근 60여 년을 이어져 왔던 철길이었다
저 공구통 요금표에 위하면 모산역에서 성거 150원, 입장 180원, 미양 250원,
안성은 가운데 숫자가 지워졌지만 아마도 280원이었지 않았을까?
그리고 장항선의 종점인 장항은 1,600원이었고
전라도 남원은 1,800원, 순천은 2,400원,
영등포 730원, 노량진 750원, 용산 770원, 서울 800원,,,
경상도 김천은 1,240원, 구미 1,410원, 왜관 1,550원, 동대구 1,780, 밀양 2,210원
장항선은 애초부터 단선이지만 열차 교행을 위해 신창역 부근에만 복선으로 해 놓았다
천안역 - 모산역 - 온양온천역 - 그리고 다음역이 바로 신창역인데 2008년 1월 1일부터
장항선 기차는 온양온천역에서 신창역, 학성역, 선장역, 옛 도고역을 거치지 않고
곧장 새로 신설된 도고역으로 달렸다
신창역 바로 옆으로는 신창 파출소?
아니 지구대라고 해야 하나?
요즘 얼라들은 파출소라고 말하면 파출소가 뭐냐고?
파출부 있는 곳이냐고?
여하튼 역 옆에는 신창 파출소가 있고 신창 면사무소가 있지만
열차는 2008년, 그 이전부터 신창역을 무정차로 통과했다
신창역은 면사무소가 있는 이곳 오목리에 세워져서 근 80간 기차가 다녔지만 지금 현재는 철로도 다 뜯겨 나갔다
신창역은 순천향 대학이 있는 읍내리로 이전했다
하지만 이곳과 10여 리나 떨어져 있는 4차선 대로변이다
신창역 승강장 표지판에는 왼쪽은 온양온천역 오른쪽은 학성역이라고 쓰여있다
앞에 보이는 방향으로 약 5~6Km 정도 가면 학성역이다
서자! 살피자! 건너자!
건널목 앞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설 필요도, 살필 필요도 없게 되었다
왜냐?
지금 현재는 철로가 다 뜯겨 나갔으니까,,,
장항선 신창역에서 도고온천역까지는 곡선과 가파른 경사로 되어 있다
그리고 건널목 구간이 많기 때문에 기차의 평균 속도가 시속 50Km 정도 됐을까?
아니, 체감으로 느끼는 속도는 시속 30~4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시속 300Km의 KTX 고속열차에 비하면
장항선 단선 철도를 달리는 기차들은 굼벵이 걸음 수준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KTX고속열차는 차갑고 썰렁한 질서만 있지 훈훈하고 끈끈한 인정이 없다
바쁘디 바쁜 현대인들의 급하디 급한 성격에 맞추어 시속 300Km의 속도로 달리다 보니
비합리적이고 비경제적인 나에게는 끈끈한 인정의 손길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우리같이 어벙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 기댈 곳이 좀 필요한데
KTX고속열차가 지나는 도시들은 잘 차려입은 위장대의 병사들처럼 너무 번듯하게 각이 잡혀있어
잠시 몸을 기대고 쉴만한 마땅한 공간을 찾아도 그런 공간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으리으리 삐까번쩍 세종 정부 종합청사
시골 들판 한복판에 떠억하니 버티고 있는 충남도청 청사
그 휑한 들판 한가운데로 6차선, 8차선 도로가 지나고
거대한 규모의 내포 신도시 충남도청 공공 부속건물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더 크게 더 높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기만 하는 시, 도청 건물들과 신도시의 빌딩들,,
그 한가운데 서 있으면 나는 어느새 작은 새 한 마리가 되어 금세 기가 죽어버린다
모두들 나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알고 더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의 관공서는 규모와 크기가 작아 일반 주택 같아 보인다는데
왜? 한국의 관공서는 유난히 규모가 점점 커가고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일까?
이것도 실용성보다는 보여주기식 형식적 관행일까?
아님 허영일까?
하지만 장항선 단선 철로 위를 느릿한 속도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그런 모습들은 겉으로 그럴듯하게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도시인들의 허영이란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겉으로는 평등과 평화와 정의가 공존하는 자유로운 도시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각 지역마다 생활환경과 특성이 다르고 삶의 질도 각자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나 사는 지역과 타 지역의 삶과 질을 따질 수는 없지만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전 국토의 도시화 전 국토의 빌딩화 전 국토의 산업화가
현대인들을 갈수록 성급하게 만든다
조급해져 가기만 하는 현대인들!
조금 기다리기라도 하면 숨이 곧 넘어갈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거 빨리 좀 주쇼! 시간없슈! 빨리 먹고 한 바퀴 씽~ 하니 돌아보고 가야 돼요!"
그리곤 연속 재촉을 한다
뭐든 빨리 먹고, 빨리 구경하고, 그리고 또 빠알리 집으로 가고,,,
철길을 따라 앞에 보이는 방향으로 약 7~8Km 정도만 가면 옛 도고온천역이다
2007년까지 장항선 열차가 도고온천역에서 정차를 했었다
하지만 2008면 1월 1일 부로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리지 않는 폐역사가 되었다
안내판에 왼쪽은 대천, 장항 방면, 오른쪽은 천안, 서울 방면 쓰여 있다
하지만 2008년 장항선 종착역은 익산역이 되었다
이제 장항선 열차는 변경된 선로를 따라 금강 하구둑을 넘어 군산, 인산까지 가기 때문이다
장항선의 종착역 장항역도 현재는 화물 전용 역사로 바뀌었다
삽교역은 장항선 철도가 영업을 개시하기 시작한 1920년대 초반부터
약 80년이라는 세월을 기차가 다니고 있던 역이었다
1920년 대라면 덕숭산 수덕사에 기라성 같은 인물 님들이 참 많이 포진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조선불교의 선맥을 이어온 만공 스님, 청춘을 불사르고의 저자 일엽 스님
그리고 한국 미술의 선구자 수덕여관 이응로 화백, 한국 최초의 여류 화가 나혜석,,,
그러기 때문에 수덕사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일엽스님과 또 수덕여관의 이응로 화백,
그리고 화가 나혜석도 예전엔 이 삽교역에서 내려 비포장 산 길을 따라 덕숭산 수덕사를 오르지 않았을까?
철도청 자료에 의하면 삽교역은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약 7년간 "수역사역"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 잊을 길 없어 ~~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
아아아아~~~ 수덕사에 ~~ 쇠북이 운다 ~~
누가 불렀더라?
아! 맞다! 마저! 송춘희,,,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대자유를 찾으러 덕숭산 수덕사에 들어가
피나 나고 알이 배기는 백배를 하면서 수도 하는 여승을 이렇게 비하해도 되는 건가?
아니 ,, 정말 그랬다
당시 장안의 장바닥 주점에서는 김일엽, 나혜석의 이야기가 세인들의 술안주감이 되곤 했었다
김일엽,
그녀는 평양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나 일본 유학을 하고
같은 유학파 남성과 열렬히 사랑하다 파경을 맞이하여 덕숭산 수덕사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만공 스님에게 인가를 받아 머리를 깎고 수도승이 되었다
그때 김일엽의 절친한 친구 나혜석도 이혼당하고
후배 화가 이응로가 운영하는 수덕여관에 5년간 머물며 머리를 깎고자 했지만
만공스님으로부터 중이 될 재목이 아니다 하여 누차 거절 당했다
당시 김일엽과 나혜석은 1896년 생 동갑이었다
이때 일엽스님은 아들이 하나 있었고 나혜석은 아이가 둘이었다
일엽스님이 절에 머무는 동안 일엽의 아들이 찾아왔으나 일엽은 끝내 아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때 일엽의 아들을 위로해 준 여인은 다름 아닌 수덕여관에 머물던 나혜석이었다
하지만 나혜석은 5년간 생활하던 수덕여관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다가 무연고자 병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일엽스님의 아들은 10여 년 전 다시 수덕사를 찾았다
그 아들도 중이 되어 있었다
"일당"이란 법명을 가진,,,
이렇게 삽교역(수덕사 역)은 당시 사연 많은 당대의 사람들이 오갔던 역이었다
지금 현재 삽교역은 완전히 철거되어 흔적조차 없다
장항선 역사였던 삽교역은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겨 화물만 취급하는 화물전용 역사가 되었다
화양역은 삽교역과 홍성역 사이에 있는 간이역이다
때문에 폐역이 될 무렵, 장항선의 모든 기차들이 서지 않고 무정차로 통과했다
당시 화양역은 국도에서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위치를 옮겨 신설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에는 천안에서 홍성까지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이제 장항선 간이역 몇 개 사라지고 나서부터는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것 같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초에 역사가 생긴 이래 근 85년간 자리를 지켜왔던 홍성역!
장항선 홍성역도 위치를 옮겨 크게 확장하여 신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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