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앞 나지막이 솟아있는 남산에 저녁놀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을 무렵
남산공원 입구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있던 허허 백발의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저잣거리 가로등도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폐점시간이 임박한 정육점과 생선가게는 고등어 대가리, 갈치 대가리, 임연수 대가리들이 멋대로 뒹굴고
시장 앞 남산공원 입구에 모여 있던 등 굽은 노인들의 모습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 할머니들은 어디서 무엇들을 하고 있기에
시장 앞 공원 입구에는 할아버지들만 올망졸망 모여 있었을까?
할아버지들은 늙어서도 바깥어른 노릇을 하고 계신 걸까?
젊은 시절 남자의 얼굴은 이력서와도 같았고
여자의 얼굴은 무엇인가 요구하는 청구서와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 할매 할배가 되니 반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늘그막 할아버지들의 얼굴은 청구서가 되었고
그 반대로 할머니들의 얼굴은 이력서가 되어 있었다
쥐를 싹싹 잡아 죽이자고 외치던 더벅머리 쥐약 장사도 보이지 않고
좀약장사, 고무줄 장사, 수세미 장사, 머리핀 장사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쯤 이 별이 빛나는 밤에 어디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텅 빈 저잣거리에는 달 하나가 전봇대에 걸려있다
파장한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가가는 길
오랜만에 시장 순대국밥 선술집 골목을 들어가 보았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골목은 저녁시간만 되면 국밥과 막걸리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로
하루 온종일 북적이던 선술집 골목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통시장 사양화로 어둠이 내리는 시간만 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밤 낯을 가리지 않고 북적이던 천안 중앙시장 칼국수, 순대국밥 골목,,,
당시엔 저녁시간만 되면 선술집의 주태백들은 하루 온종일 콧짠뎅이가 벌게 가지고
"천두웅사안 ~ 바악 다알재는 ~ 울고 넘는 우리 님아 ~
물항라아 ~ 저고리 이 가 아 ~ 꾸준 비에 젖는 구우나아 ~ "
하면서 나름대로 목청을 돋우며 구성지게 한 가락씩 뽑던 거리였다
그렇게 구성지게 잘 불러대던 그때의 주태백들은 간데없고
이제 이 선술집 골목은 날 저물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순대국밥집이 보였다.
현재시각 저녁 8시...
이 시간이면 천안 신도시의 음식점들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이곳 재래시장의 선술집들은 깊은 침묵 속에 잠기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에 마지막 늦손님인 듯한 사람들 몇몇이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산한 겨울밤도 흘러가고 있었고
술잔을 기울이는 마지막 늦손님들도 주절주절 흘러가고 있는 저녁 8시의 선술집 풍경이다
주점 골목을 지나다가 이곳에서 발길이 멈추어졌다
갑자기 스산한 시장 골목의 적막을 깨며 주모가 소리를 높인다
선술집 주모의 높은 소프라노음...
"그만 좀 퍼마셔! 초저녁부터 마신술이 벌써 세병째여! "
주태백이 취해서 헬렐레하는 소리...
"나 안 취했다니까... 꺼억 ~ 어여 한병 더 줘 ~ 딸꾹 ~ "
선술집 주모가 주태백을 달래는 소리
"이러다 길거리에 쓰러지면 객사 하는겨...알어?
속 썩이지 말고 오늘은 그만 마시고 어여 집에 들어가 좀 자! "
주태백이 비틀거리며 투덜거리는 소리...
" 따악 한 병만 더 줘! 한 병만 마시고 가께! "
"하이고매 ~ 뭔 술을 초저녁부터 저리 퍼묵고 또 달랜다냐? 없어! 어서가~~~ "
스산한 겨울밤, 주점에서는 주모와 주태백간 이런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술잔을 주고받는 늦 손님들의 이야기 소리가 두런두런 흘러나왔다
좁고 긴 터널을 지나듯 시장 구석 골목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이번에는 내가 전에 가끔 다녔던 단골 선술집들이 보였다.
병천집, 공주집, 보령집 등등...
일어서면 머리가 천정에 와닿고 뻗으면 손이 벽에 닿을 것 같은 70~80년대 시절의 판잣집 순대국밥 골목,,,
그중 보령 집은 이불 한 장 주고 할매한테 막걸리를 얻어먹기도 했던 곳,,
오익! 그런데 이게 뭐야?
메뉴판에 보이는 새끼보?
뭐 이런 무지막지한 메뉴가 다 있노?
머리고기, 도야지 껍딱은 알겠는데 ,, 새끼보라니?
그야말로 도야지로 시작해서 도야지 시리즈로 끝장을 내는 주점이다
결국 도야지 대가리 한 접시 시켜놓고 마주 앉은 봉달이와 달봉이,,,
세월은 고요히 흘러가고 있었고
선술집의 할매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고
부산 봉달이와 천안 달봉이도 주절주절 흘러가고 있었다
조용히 바라보면 아무것도 흘러가는 것이 없는데
공연히 봉달이와 달봉이만 주절주절... 주절거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천안 중앙시장 칼국수, 순대국밥 골목은 기능이 정지되어 시간조차 흐르지 않는다
돈 없는 노숙자들이 어쩌다 돈이 생기면 드나들던 곳
주머니에 돈은 좀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도 드나들었던 곳
홍도야~ 우지 마라~~
옵빠가 있다~~
아내에 갈 길을 너는 지켜라 ~~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아무래도 좋을 이 풍진 세상
아무리 고래고래 목청껏 불렀어도 결코 홍도의 사랑은 흐르지 않았지
이제 세월이 한참 흐른 후, 20년 주막거리에 들어서니
그때 내가 보았던 주점들의 주모들이
할매였던가? 가시내였던가?
이 주점들은 간혹 노숙인들도 찾아와 외상술을 마시고 가던 곳,,
말이 외상술이지 공술이나 마찬가지
노숙인이 돈이 어디 있겠는가?
소주 한 병에 3천 원, 안주는 콩나물국 공짜..
중앙시장 순대골목 보령집은 예전에 나의 단골 주점
연세가 70 중반 할매가 하고 있다가 너무 연로해서 더 이상 주점을 꾸려 나갈 수 없게 되자
자손들이 아파트로 모시고 갔다
그 할매가 주점을 하고 있을 때는 노숙인들도 많이 드나들었고 외상값이 10만 원이 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주 한 병 2천 원인데 10만 원 외상이면 소주 50병이 외상이란 이야기,,
물론 안주는 공짜 콩나물국이니까...
개중에는 외상값을 주는 노숙인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공짜였다고 한다
할매가 노숙자들에게 외상값을 받으려고 술과 콩나물국을 주었을까?
못 받을 줄을 알면서도 주었던 것이지
그 후, 시장을 지나다가 그 할매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어떻게 소리 소문도 없이 주점을 그만두었냐고 여쭈었더니
자손들이 이제 힘에 부치니 그만 좀 하라고 하도 졸라대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도인은 깊은 산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천안 중앙시장 선술집 뒷골목에도
머리에 무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팔십 세 도인이 있었다
담배 한 대 꼬나물고 술잔에 먹칠을 한다 해도
보령집 할매에게는 법문 아닌 것이 없었다
시장 뒷골목을 돌아 나오다 보니 이번에는 폭포집이라는 주점이 보였다
이 주점은 아직 한 번도 안 가봤던 주점이다
오늘은 목포집에서 한번 들어가 볼까?
중앙시장 뒷골목에는 병천집, 공주집, 보령집, 성환집, 안성집 등등
선술집 이름이 이 부근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그런데 전라도 목포집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거지?
그래! 한번 들어가 보자!
두부김치에서부터 꼬막, 낚지, 뼈 없는 닭발, 홍어무침, 가오리찜, 꼼장어 볶음, 오징어 볶음,
제육볶음, 부추전, 해물파전, 잔치국수, 들깨 수제비, 칼국수 등등...
오아~~~
병천집, 공주집, 보령집, 성환집, 안성집은 상대도 안 되겠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해물파전과 김치전 하나, 그리고 가오리찜을 시켰다
뒷 좌석에서는 할저씨가 막걸리를 마시다 갑자기 다방에 전화를 걸어 키피를 시켰다
그리고 다방커피와 막걸리를 번갈아 가면서 마신다
와~~~~ 비단왕 아직 한 번도 못 보던 주법이었다
이 작가님!
기왕이면 내 자서전도 하나 써 주시죠?
이장, 저장, 그장, 요장을 환장하게 싸돌아 다니는 비단장수 왕서방 자서전 말입니다
머라고요? 3천만 원 내놓라고요?
3천만 원 아니면 안 한 다고요?
3천만 원이면 20도짜리 진로 소주가 몇 병인지 아십니까?
3천만 원이면 진로소주가 3만 병입니다
3만 병이면 하루에 한 병씩만 마셔도 3만 일,
80년을 마실 수 있는 량이죠
나 그냥 80년 동안 술이나 마실라요
들어가 보니 역시 이 주점 주인은 고향이 목포였다
목포의 눈물,,,
사아공에 배엣노래 가물 거리이며~~~
삼하악도 파도 깊이 파고 드는데~~~
뭔 목포에는 눈물이 그렇게도 많다냐?
할매도 왕년에 이 노래 부르면서 눈물좀 흘리셨겠네??
뭐라꼬요?
니네들 같은 피라미들이 어찌 봉황의 눈물을 알 수 있겠냐고요?
목포 삼학도 봉황의 눈물?
봉황은 한번 날았다 하면 십만 팔천리,,,,
너희 피라미들이 절대 흉내 낼 수 없지
그러니까 목포에서 천안 까지 단숨에 날아 온거지
그래서 이날 이작가님이 삼학도 목포댁이라는 타이틀을 하나 부여해 주고 나왔음
술은 일종의 마약과 같다?
조금씩 절제하여 마시면 혈액순환을 도와주지만
이판사판 공사판으로 퍼 마시면 주정뱅이로 떨어지는 수가 있다
하지만 술은 때로 친구와의 의리를 돈독히 해 주기도 하고
또 사랑을 불붙게 만들어주는 사랑의 묘약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메마르고 거칠어진 정서를 촉촉이 적셔 주기도 하고,,,
또 목포 삼학도 봉황의 눈물이 되기도 한다
이날 나와 같이 술을 마시던 이 작가님은 술 속에서 보석과 같이 빛나는
시의 언어들을 건져 냈는지 모르겠지만
비단왕은 이날 술 속에서 부어오른 간뎅이만 건져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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