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트에 사용된 사진들은 2010년 7월에 촬영된 사진들임을 알려드립니다
태백시 장성동에서 동점역을 지나 5~6분 정도 달렸더니 육송정 삼거리가 보였다
바로 이 자리서 왼쪽으로 3Km 정도 들어가면 영풍 제련소와 석포초등학교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5Km 정도 가다 보면 90년 대 초, 폐광되었던 폐광촌 마을 대현리가 나온다
이날 대현리로 오게 된 이유는 나와 같이 동행했던 분 고향이 대현리였기 때문이다
그분이 얼마 전까지 수원에 사시다가 작년 3월 경에 정선군 신동읍 동강변으로 이사 온 분이다
그분과 함께 석포면 영풍 제련소로 가다가 고향마을 석포 대현리에 잠시 들렸다
석포 초등학교 대현 분교장은 청옥산 넛재를 넘어오다 보면 대현리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날 나와 같이 동행한 그분도 40년 전에 이 학교를 졸업했다고 하시는데
당시는 대현 분교장이 아니라 대현국민학교였다고 한다
학생 수도 무척 많아서 운동장은 늘 노는 아이들로 가득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교실마다 학생들이 꽉 들어 차 빈 책상이 없을 정도였다나?
그랬던 대현 국민학교가 90년 대 초, 대현리 연화 광업소가 전면 폐업하게 되자
학생 수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여 99년도에는 결국 석포초등학교로 편입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 대현국민학교,,,
아니 아니,,, 대현분교장은 총학생 수 7명으로 줄어 폐교될 위기에 처했다
학교의 교실 수을 보면 7명의 학생이 등교하는 학교 치고는 상당히 커 보인다
90년대 연화 광업소가 한창 호황을 누리고 있을 당시 학생이 무척 많았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교실 수를 확장하다 보니 학교 건물도 저렇게 크게 되었다나?
대현 분교장은 이 마을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었고 학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마을의 상징이었다
이렇게 마을의 상징 역할을 하고 있는 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여기는 대현리 마을 중심부라 할 수 있는 곳인데 슈퍼가 몇 군데 있고 버스 정류소가 있다
이 동네는 행정구역이 경북 봉화에 속해 있지만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은 강원도 태백시로 통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장을 보러 다닐 때도 태백으로 다닌다
그러니까 대현리는 경북 봉화군이지만 생활권은 강원도 태백시에 속해 있다
우리는 이날 저기 봉평 막국수 집에서 막국수 한 그릇씩 먹고 나왔다
저 막국수 집은 이 동네 아줌이 하고 있었는데 면을 즉석에서 직접 뽑은 다음
봉평의 전통 방식으로 육수를 우려낸다
때문에 세련된 맛은 없다
하지만 고향의 향기가 담겨져 있는 막국수는 시골스럽지만 깊은 맛이 있었다
이 막국수 집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오래전 속셈학원이었는데 지금은 비워져 있다
80~90년 대 연화 광업소가 호황기였을 때는 이 속셈학원도 원생들이 상당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이 동네에서 속셈이 필요했을까?
대현리 버스 정류소에서 석포면 소재지 방향으로 3Km 정도 내려오다 보면 4층 짜리 아파트가 보인다
저 아파트는 예전에 연화 광업소의 광원들이 살았던 아파트였다고 한다
한때 이 거리는 연화광업소의 광원들이 북적이던 거리였지만
90년대 대현리의 광산들이 문을 닫게 되는 뜻하지 않은 사태가 벌어지자
모두 서둘러 이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저 아파트는 15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비어지게 된 것이다
대현리는 이렇게 비워져 있는 아파트가 5~6군데 정도 된다
두메 산골 아파트 치고는 그래도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다
아파트는 모두 비워져 있었지만 경비실 옆에는 커다란 똥개 한 마리가 있었다
내가 가까이 접근하자 으르렁 거리며 노려보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재작년 지나갈 때 보았던 그 똥개였다
대현리에서 석포 소재지 방향으로 3Km 정도 내려왔나?
월암리 마을이 보였다
이곳에도 5층 짜리 아파트가 대 여섯동 정도는 되었다
이 아파트도 연화 광업소 광원들이 살다 간 아파트였다고 한다
1970년 경, 연화광업소 주변에는 광원들의 허름한 사택 100여 가구가 있었는데
광원들은 그곳에서 20년 정도 살다가 1990년 경
이곳에 아파트가 새로 건축되자 모두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러나 새 아파트에서 사는 즐거움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주한 지 3~4년 정도 되었을 무렵인 90년 대 중반경, 연화광업소의 갑작스러운 폐광으로
모두들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대현리의 광업소는 석탄광업소가 아닌 금과 은, 그리고 돌과 아연을 캐던 광산이었기에
태백이나 사북 고한 폐광촌 아파트에 비하면 깨끗한 편이다
채산성 악화로 이미 90년 대 중반에 완전히 폐광되었던 이곳이
다시 어느 광업소가 재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곳 주민들과 광업자들 사이에서는 마찰이 빚어졌던 적도 있었다
폐광 후 백천계곡은 물이 맑아져 다시 열목어 같은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석포면 월암마을은 딱박골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그런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도 딱박골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분은 딱나무(당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또 어느 분은 달바위를 시골 사투리 억양으로 불렀기 때문에 딱박골이 되었다고 하고
또 어느 분은 달구경 하던 곳이라서 달박골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분들 하시는 말씀으로 보아선 월암마을에서 딱박골로 올라가면
아주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곳에 올라 달구경을 했었다나?
그래서 달바위라는 말이 줄어 딱박골이 되지 않았나?
나는 처음에 구석에 딱 박혀 있는 마을이라서 딱박골이란 지명이 붙은 줄 알았다
어릴 때 생각이 슬슬 나네요
저는 대현리 아파트 파출소 부근에 살다가 딱박골 입구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파출소는 옛날에 없어지고 구멍가게가 들어섰네요
그리고 68년도인가?
서울로 올라가 중학교에 입학했고 고등학교 때는 가족 모두가 서울로 이사했죠
- 이상 포에버님 말씀 -
저는 제재소 로구로 공장 하는 아들이지요
당시 로구로 공장 하면 이 마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요
태백 중고교 나왔고요
- 이상 대현리에 고향을 두고 미국으로 이민 간 디마니아님 말씀 -
로구로 공장 아드님 이름이 무엇인지,,,ㅎㅎ 디마니아님! 제가 그 제재소 통나무 껍질 벗기려
친구들과 놀이터처럼 놀던 곳입니다 그때는 땔감이 귀해서 제재소 톱밥 속에 나무토막도 주워오고
통나무 껍질도 벗겨오고,,,ㅎㅎ 지금 생각해도 어린 나이에 무슨 생활력이 그리 강했는지,,,
- 이상 석포면에 사셨던 현정님 말씀 -
석포 영풍 제련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기냥 영풍상사라 부르고 있지요
디마니아 님께서는 제재소 모탱이에 살았으면 혹시 김길겸이, 김성수, 김경자
이런 이름들이 생각나는 지요? 그리고 태백고 몇 회 신지?
- 이상 소백산님 말씀 -
어릴 적 고향 대현리 다시 보니,,, 엄청 반갑고,,, 그립고,,,
지금은 어찌하여 일본 나고야에 살고 있지만,,,,
- 이상 대현리에 고향을 두고 일본 나고야로 가신 분 말씀 -
백천 계곡은 태백산과 청옥산 사이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계곡으로서
이 계곡은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열목어가 서식하는 계곡이다
특히 석포면 백천계곡 열목어 서식지는 세계에서 열목어가 살 수 있는
가장 남쪽 지역에 있다는 특이성 때문에 그 희귀 가치가 더욱 크다
열목어 서식지인 백천계곡으로 가려면 석포면 대현리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백천 계곡은 대현분교장 담장을 끼고 들어가야 한다
대현분교장 정문에서 왼쪽 학교 담장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뒷부분 교실이 보인다
이곳에셔 현불사란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대현분교장 담장을 지나 1Km 정도 가다 보면
태고의 원시림 속에 은밀히 숨어있는 백천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태백산과 청옥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백천계곡은 민간에게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아직도 태고의 원시림 그대로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여름에 발을 담그면 몸에 소름이 돋울 정도로 물이 차갑지만 들어가지는 못한다
관리 사무소에서 물속 출입은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천계곡은 천연기념물 및 천연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화기를 소지하고 입산하거나 음식 등을 반입하여 취사, 취식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계곡에서 고기를 잡는 행위나 발을 담그는 행위도 엄격히 규제되며
위반 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백천계곡이 위치한 대현리는 금과 은, 구리, 아연 등을 캐던 연화광업소가 있던 광산 마을로서
90년 대 초, 폐광되어 폐광촌이 된 마을이다
폐광 당시까지만 해도 백천계곡은 물이 오염되어 열목어가 멸종된 상태였다
폐광 후 봉화군과 현불사의 노력으로 지금의 백천계곡에는 다시 열목어가 노닐 수 있게 되었다
열목어는 물의 온도가 20도 이상 올라가면 죽고 마는 냉수 어종으로서
물이 차디찬 물속에서 생존이 가능한 어종으로 알려졌다
백천계곡은 해발 1500m가 넘는 태백산과 해발 1200m가 넘는 청옥산
그리고 1100m에 달하는 조록바위봉에 폭 휩싸여 물이 맑고 수온도 상당히 차다
때문에 열목어가 서식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열목어가 서식하는 세계 최남단 지역으로 열목어의 남방한계선으로도 불린다
특히 백천계곡에서 서식하는 열목어는 모양과 색깔이 특이하고 맛 또한 뛰어나다고 하는데
백천계곡 물속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금지되고 있기 때문에 맛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대현리 대현분교장에서 벡천계곡을 다라 약 3Km 정도 올라오다 보면
청옥산 자락의 현불사(現佛寺)와 만나게 된다
현불사는 불승종(佛乘宗) 종단으로 1990년도에 창건되었으며
창건은 설송 종정스님이 했다는 사찰이다
설송 스님은 1990년 되던 해 속납 40대 중반에
설송이라는 법명을 받고 수원의 모 사찰에서 법화경을 깨쳤다는 스님이다
스님은 속납 91세 되던 해인 2009년 5월에 이곳 현불사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설송 스님은 총선이나 대선을 앞둔 대선 후보들의 성패를 점쳐
많은 정치인들이 찾아와 유명세를 탔던 스님이다
그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했던 적이 있어서 세간의 화젯거리가 된 일도 있었다
이 외에도 80~90년대의 많은 청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현불사를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금강경(金綱經)과 반야경(般若經)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는 반면
이곳 현불사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다
현불사는 오래전에 백천계곡에서 자취를 감췄던 열목어를
다시 기사회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찰이다
지금도 현불사는 입구에 백천계곡과 연계시킨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는 많은 열목어들이 노닐고 있다
이곳은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로 알려진 현불사의 백천계곡으로서
한동안 멸종됐던 열목어들이 다시 회생하여 살고 있다
열목어는 차가운 물에 사는 냉수 어종으로서 물의 온도가 20도 이상 올라가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냥 탈진해 버리는 물고기다
따라서 햇볕이 드는 계곡보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계곡으로 유입되는 태양열이 많지 않은
이곳 백천계곡이 열목어들이 살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석포면 대현리에 사는 열목어는 세계적으로도 희귀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낙동강에서는 유일하게 서식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대현리의 백천계곡이다
열목어가 살고 있는 위치를 볼 때도 세계적으로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대현리 백천계곡 열목어는 한때 광산 개발로 인하여 물이 오염되자 멸종되었으나
현불사 스님들과 봉화군의 노력으로 기사회생하여 다시 백천계곡에서 노닐게 되었다
열목어는 빙하시대에 살던 어종으로서 붉은 색깔을 띠고 있다
따라서 열목어는 더울 열(熱) 자에 눈 목(目) 자, 고기 어(魚) 자 하여 열목어로 불리게 되었다
때문에 열목어는 항시 눈에 열을 지니고 있는 물고기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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