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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풍경, 07~17년 이야기

80년대 공무원 월급, 탄광 노동자 월급 얼마였을까?(정선 함백역 함백탄광)

by 비단왕 2024. 5. 4.

이 포스팅에 사용된 사진들은 2011년 8월에 촬영된 사진들입니다 

13년 전. 정선군 신동읍 동강변에 사는 블로그 이웃을 방문했을 때 가봤던 곳인데요 

제 블로그에 있는 내용들을 어느 날 모두 삭제시켰기 때문에 이 포스트도 함께 날아갔죠 

하지만 어느 카페에서 스크랩해 갔더군요 

2011년 9월 스크랩했던 내용을 다시 복원시켰습니다 

 

예미 사거리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 2011년 8월 촬영

 

정선군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함백탄광은

사북과 고한처럼 아직도 많이 알려있지 않은 곳이다

함백탄광은 태백선 철도변이나 국도변인 예미에서도

두위봉(해발 1466m) 깊숙한 골짜기를 타고 십 오리길이나 더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도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함백리에 하나 있던 함백역마저도 1993년 함백탄광 전면 폐광과 함께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이 됨으로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차 점차로 잊혀 갔다

 함백탄광으로 가는 길은 신동읍 예미 사거리에서

엽기소나무가 있는 조동리 방향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7~80년대 번성했던 함백탄광의 흔적을 찾아가 볼까요? 

 

함백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함백리(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2011년 8월 촬영

 

예미 사거리에서 태백선 철로 아래를 통과하여 약 3~Km 정도 들어오다 보면

한때 탄광촌으로 번성했던 함백리 마을을 지나게 된다.

함백탄광 방제갱이 있던 곳은 이곳 함백리에서 함백역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함백역 부근에서 두위봉으로 오르는 길목 --  2011년 8월 촬영

 

함백역 부근에서 두위봉으로 오르는 길목은 아직도 검은 석탄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두위봉 함백탄전까지 약 2~3Km 정도 되는데 오르는 구간은

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온통 거뭇거뭇하다.

함백탄광은 1993년에 전면 폐광되었지만 그 흔적은 지금 현재까지 남아 있다 

 

함백역 마을 안경다리를 지나 약 3Km 정도 올라오다 보니 두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보였다

등산로 입구에는 주차장과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주차장 옆으로는 당시의 모습들을 

그대로 재현시켜 놓은 방제갱과 갱에서 석탄을 운반하던 탄차들이 전시되어 있다 

 

두위봉 오르는 입구에 조성된 함백탄전 방제갱

 

함백탄전은 정선군 사북의 대표 광업소 동원탄광 광업소(1963년 설립)와

고한탄광, 그리고 구절리 탄광들 보다도 그 역사가 훨씬 깊다

두위봉의 두위갱을 비롯하여 단곡갱, 이목갱, 방제갱, 미륵갱,

그리고 자미원의 자미갱 등이 있는데

지금 사진에 보시는 갱구는 두위봉 자락의 방제갱이다 

 

함백탄광 개발구역(왼쪽부터 두위봉 자락의 두위갱, 단곡갱, 이목갱, 방제겡, 미륵겡, 자미갱)

 

1948년 단곡구역에서 출발한 함백탄광은

1950년 대한석탄공사의 창립에 맞추어 삼척탄전 함백 광업소로 창립되었다

그러니까 정선군의 다른 광업소들보다 그 역사가 훨씬 깊다 

때문에 함백탄전은 정선 석탄산업의 1번지로 불리어 왔다

이 중에서 방제갱과 지미원의 자미갱은 사갱으로 되어 있는데 사갱은 아래 그림과 같다

 

사갱 안내판

 

사갱이란 경사진 갱도를 말한다.

수직갱 수평갱에 대응하는 말이다

탄광에서는 완만하게 경사져서 지하로 계속되는 광상(鑛床), 탄층이나

비교적 얕은 광상의 개발에 이용이 많다.

사갱은 갱도궤도 위에 광차(또는 탄차)를 직접 올려놓고

운반할 수 있는 범위의 것으로서, 경사는 25도 이내이다.

사용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이 있는데, 운반을 목적으로 하는 운반사갱, 통로로서의 인도사갱,

통기상으로 본 입기사갱, 배기사갱, 그리고 광상(또는 탄층)을 따라 채굴해 들어간 연층사갱 등이 있다.

토목공사용으로는 지하발전소의 운반사갱, 송전선을 끌어내기 위한 케이블 사갱 등이 있다

 

- 이상 함백탄광 안내문 내용 -

 

사갱으로 된 두위산 자락의 방제갱 (함백탄광)

 

함백탄광 안내판

 

함백탄광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에 위치했다.

일제시대 삼척탄전 조사 시 석탄부존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지형이 워낙 험하여 개발에 착수되지 못한 상태에서 광복이 되었다

그러다 북한으로부터의 송전 중단으로 전력난이 심화되고 영월의 석탄생산 부진으로

영월화력발전소의 전력 생산이 차질을 빚게 되자

정부는 발전용단의 안정공급을 위해 "함백개발계획"을 수립하고

1948년 11월부터 개발에 착수했다

 

이상 함백탄광 안내판에서 옮겨온 내용 -

 

위의 내용대로라면 함백탄광은 정선군 사북읍의 대표 광업소

동원탄광 광업소(1963년 설립) 보다 그 역사는 15년이나 더 앞선다.

때문에 함백탄광은 정선군의 석탄산업 1번지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당시 광원들이 사용하던 장비들(방제갱 내부에 전시)

 

방제갱에서 내다 본 탄차

 

70년대부터 사용 됐다는 함백탄광의 석탄 운반차

 

70년대부터 사용 됐다는 함백탄광의 석탄 운반차

 

함백탄광의 석탄운반 레일

 

70년대부터 사용 됐다는 함백탄광의 석탄 운반차

 

탄차와 탄차간의 연결 고리

 

함백탄광의 석탄 운반차(두위봉 자락 방제갱 앞에 전시)

 

함백탄광 방제갱 앞에 세워진 추억사진관과 함백다방

 

함백탄광 방제갱 앞에 있는 추억사진관은 2006년 6월, 이 지역사람들에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신동읍이 평창군 동면에서 정선군으로 편입된 지 1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나? 

추억사진관엔 이 땅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날 전시된 사진은 몇 점 되지 않았다. 사진들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일제 강점기 때 예미 공립보통학교 졸업식 장면, 자미원과 예미를 오가던 시발택시,

함백광업소 창업 당시 현판을 거는 육군중령, 6.25 전쟁이 나던 해 함백공립학교 졸업식,

그리고 함백탄광이 번창했을 때 함백 시내의 함백극장 등... 사진 몇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함백다방은 안경다리에 있던 옛날 다방 글씨체를 모방해서 썼다고 한다 

 

함백탄광 방제갱 앞에 세워진 추억사진관

 

그렇다면 1980년도에 이곳에서 근무했던 광원들은 월급을 얼마나 받았을까?

당시 광원들 월급은 공무원 월급보다 3배 정도 많았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받았는지 살펴보도록 할까요?

 

81년 3월, 함백탄광 광원의 월급봉투 (함백역 소장)

 

이 월급봉투는 현재 함백역에 소장되어 있는데 81년 3월분, 광원의 월급명세표이다

월급 총액은 354,000원 그리고 상여금은 85, 893원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의료보험 6,090원, 노조경비 3,060원, 사택료 900원, 원탄대 8,095원,

보험 5,000원, 병원약대 7,600원, 공제조합 3,400원, 식육대 3,600원을 공제하고 나니

총지급액은 306,078원이었다 

 

83년 3월, 함백탄광 광원의 월급봉투 (함백역 소장)

 

83년도에는 81년도보다 월급이 조금 많아서 총액이 422,147원으로 되어 있다

이중 소득세 880원, 방위세 88원, 주민세 61원, 노조 조합비 4,221원, 의료보험 7,182원,

양곡대 26,720원, 원탄대 12,590원, 보험료 5,000원, 공제조합 13,020원,

치료비 6430원 등을 공제하고 나니 총수령액은 345,955원이었다

 

84년 1월, 함백탄광 광원의 월급봉투 (함백역 소장)

 

84년도는 월급총액이 442,410원으로 83년도보다 약간 많다 

의료보험 7,182원, 노조경비 4,424원, 양곡대 14,700원, 원탄대 12,590원,

국민저축 5,000원  공제조합 17,000원을 공제하고 나니 총지급액은 381,494원이었다 

 

문경 석탄 박물관

 

그렇다면 다른 지역 탄광, 문경 탄광의 당시 월급 사정을 어땠을까? 

문경 석탄박물관에 전시된 81년도 광원의 월급은 25만 9,529원이었다 

하지만 함백탄광 81년 3월, 월급 총수령액은 354,000원으로 근 10만 원 정도가 더 많았다 

문경 석탄 박물관 자료에 위하면 81년도 문경시청 공무원 월급은 11만 9,546원이었다

당시의 함백탄광 광원들 월급에 비하면 공무원들 월급은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액수였다 

 

81년도 우리나라 쌀 한 가마 값이 6만 4천 원이었으니 당시 함백탄광 광원의 한 달 월급으론

쌀 5 가마를 사고도 돈이 조금 남는 액수였다.

그러나 말단 공무원 월급으론 쌀 2 가마 사기도 벅찬 액수였다

 

한국은행 경제 통계 시스템 자료에 위하면 우리나라 쌀값 동향은 이렇다(단위는 한 가마)

 

1980년 1월을 기준으로 한 쌀값이 45,146원

1981년 1월 기준 64,387원

1982년 1월 기준 62,374원

1983년 1월 기준 66,021원

1984년 1월 기준 64,261원

1985년 1월 기준 65,644원이다

 

- 이상 한국은행 경제 통계 시스템 자료에서 발췌 -

 

함백역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차창 밖으로 가랑비가 어지러이 날리고 있는 함백역의 오후시간    

그곳엔 찾는 사람 하나 없어 고요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멀리 두위봉 산꼭대기에도 가랑비가 날리고

마을 앞 개천에는 자욱이 물 흐르는 소리 

 

오늘은 이 마을에서 하룻밤 보내고 가려고 작정하고 이곳까지 온 거였다 

마을이 사방팔방 높은 봉우리들로 꽉 막혀 좀 답답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이런 마을이

요즘 같은 피서 절정기에는 여관이나 민박집 잡기가 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잔아도 여행 이틀째인데 어디서 방도 못 잡고

노숙만 하고 돌아다녀서 온몸은 몹시 끈적였다 

 

머.... 볼 것도 없는 마을이지만,

아니 아니.... 볼 것이 없는 마을이 아니라 놀이거리가 없는 마을이다 

아니 아니..... 볼 것도 없는 마을..... 그것이 바로 나의 볼거리였다 

하지만 이 마을에도 볼거리는 있었다 

녹슨 함백선 철도에서부터 적막에 휩싸인 함백역, 아직도 검은 석탄에 그을려 있는 두위봉

탄광마을, 안경다리 폐광마을, 철로변에 서너 채씩 외따로 떨어져 있는 80년대 탄광 판잣집 등....

이렇게 볼거리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만 몰려가고

이곳은 아무도 찾지 않았다 

 

고요 적막속에 휩쌓인 함백역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함백은 한때 정선군 석탄산업 1번지라 불려졌다 

 그렇지만 같은 정선군의 탄광촌이었던 사북과 고한처럼 아직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간혹 몇몇 여행객들이 함백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함백역만 돌아보고는 서둘러 도망치듯 내뺀다 

적막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잠시 들어왔던 사람들이 그냥 36계 줄행랑을 치는 것을 보니,,,

 

정선군 석탄산업 1번지였던 함백리 함백역

 

함백역은 1957년 함백탄광 광업소와 함께

두위봉 자락에 산속도시가 크게 형성되자 세워진 역이었다 

그리고는 이 함백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늘 북적였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도 36년 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93년, 함백탄광의 모든 광업소들이 문을 닫게 되자 함백역도 제 기능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리고 2천여 명이 넘던 광원들과 그의 가족들은 이 산속도시를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후, 하루 서너 차례 씩 다니던 여객열차마저 끊어져 버렸다 

 

2008년 11월에 다시 복원된 함백역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함백역은 1957년 영월 - 함백 간 함백선 철도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다 

같은 정선군의 사북과 고한역 보다 역사가 훨씬 더 앞서 있다 

 

사북역과 고한역 영업 개시일 66년, 정선역 영업 개시일 67년,

아우라지역 영업개시일 71년, 구절리역 영업개시일 74년,

이처럼 함백선의 함백역은 정선군의 역들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역이었다 

이런 이유로 함백은 정선군 석탄산업 1번지라 불려지기도 했다 

 

함백역 맞이방에 진열된 통일호와 무궁화호 승차권

 

2011년 8월 2일,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에 핀 함백역 코스모스

 

2011년 8월 2일, 35도를 오르내리는 후덥지근한 폭염 속 

함백역 승강장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고 그 사이를 화물열차가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함백역에 수차례와 봤었지만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라? 여기도 기차가 지나다니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함백역 앞으로 기차가 다 지나다니고,,,

나중에 알고 보니 화물열차만 하루에 한 두 차례 씩 함백역을 지나다닌다고 하더군 

 

한 여름, 함백역 승강장에 핀, 코스모스 사이를 지나가는 화물열차

 

화물열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 뒤, 다시 적막속으로 빠져드는 함백역 승강장

 

함백역 승강장앞 터널

 

함백선 여객열차 운행이 멈춘 지도 어언 20년 세월!

이제 함백선을 오가던 여객 열차들은 예미역에서 방향을 틀어 자미원역으로 올라간다 

 

함백역 앞, 도로 표지판

 

함백역 맞은 편에 있는 함백역 화물 취급소

 

함백역에서 나와 건너편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다 스러져가는 목조 슬레이트 건물이 하나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마당에는 녹이 벌겋게 슨 국기 게양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이것이 무슨 건물인가 알아보니 70년대부터 있었던 함백역 화물 취급소라나?

 

70년대 부터 있었던 함백역 화물 취급소

 

70년대 부터 있었던 함백역 화물 취급소

 

이미 페허가 된 함백역 화물 취급소는 각목이 떨어져 나가며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그곳엔 당시에 사용하던 책상과 벽에는 태극기가 그대로 걸려 있었고,,,

석탄산업이 한창 호황을 누렸던 80년대까지는

그래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고 하는 사무실이다 

화물 취급소 안에 사용하던 집기와 책상들은

폐광 당시의 암담했던 함백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70년대 부터 있었던 함백역 화물 취급소

 

함백탄광 폐광 후, 2천 명이 넘는 광원들과 그의 가족들은 서둘러 썰물처럼 이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마을엔 무섭도록 고요한 정적이 흐르며 

마을 곳곳엔 검은 탄가루만 스산하게 풀풀 날리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역사의 역무원 마저 떠나버린 함백역은 

그렇게 적막 속에서 숨을 죽인 체 절망감으로 세월을 보내야 했었다  

 

함백역 맞은편에 있는 45년 된 역 화물 취급소

 

함백역 앞을 지나가는 국내서 가장 경사가 급한 태백선 철도

 

함백역 앞을 지나가는 국내서 가장 경사가 급한 태백선 철도

 

태백선 기차에서 내려다본 산속 도시, 함백리 마을(2009년 겨울 촬영)

 

해발 1466m 두위봉 골짜기에는 오래전부터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곳이 어디냐 하면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함백리 마을이다 

함백은 함백탄광이 들어서기 시작하던 50년대 중반부터

사람들이 이 산속으로 몰려들어 이렇게 큰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함백의 그 풍요움도 잠시....

90년대 초, 모든 광업소의 폐광과 함께 사람들은 서둘러 이 마을을 모두 빠져나갔다 

그 후, 이 마을은 지금 현재까지 적막 속에 이렇게 고요하게 묻혀 있다 

 

일체 만물은 모두 덧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번성한 것은 반드시 쇠멸한다는 사실도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짧은 영화를 누리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태백선 기차에서 내려다본 산속 도시, 함백리 마을(2009년 겨울 촬영)

 

여름 여행 두 번째 날, 어떻게 하다 보니 태백에서 정선군 함백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 마을이 하룻밤 보내고 가려고 작정하고 들어왔던 마을이었다  

 그런데.... 함백에는 여관도 없고 민박도 없었다 

예미읍내에 XX 하숙이라고 하는 하숙집이 하나 있다고 해서 

그 하숙집을 찾아가 봤더니 글씨, 얼마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하더군...

그리고 예미역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에 여관이 하나 있긴 있었지

하지만 그 여관 주변으로는 그 흔한 동네 슈퍼 하나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읍인데 어찌 여관이 그렇게도 없는 거야?  

다른 동네는 사람도 없는 저 후미진 허허 들판에 모텔도 많더만,,,

 

그러고 보니 함백이나 예미읍에는 바람둥이들이 없는 동네인가 봐 

여관이 하나밖에 없는 거 보니..... 그것도 2층짜리 쪼그마한 여관.....

다음에 이 동네 올 때는 커다란 현수막 하나 만들어서 예미역 앞에 걸어주고 와야겠다 

"바람둥이 없는 마을, 우리 마을 청정 마을 "이라는 현수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