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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 쥐뿔

국내서 가장 오래된 고개는? 문경 하늘재? 소백산 죽령? 회방사역 무쇠달 마을

by 비단왕 2024. 5. 5.

소백산 죽령 회방사역 - 2020년 11월 21일 촬영

 

비단왕 예전에 참 많이 다녔던 길 

단양 사인암에서 소백산 죽령을 넘어 영주나 봉화로 갈 때 꼭 소백산 죽령 옛길을 넘었지 

소백산 죽령 터널이 뚫리기 전부터 단양에 가면 꼭 죽령을 오르곤 했었어 

소문에 듣기론 죽령에 산적들 소굴이 득시글 했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라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던 거야  

단양 영춘면 온달산성에서 온달장군이 진을 치고 군간나루, 꼭두방터, 면위실을 서성일 때 

소백산 죽령에서는 산적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이거지? 

그렇다면 온달장군 부하들이 죽령 산적이 되었던지 온달산성을 치러 가던 신라군들이 산적이 되었던지,,,

도대체 이 궁금증을 풀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으로 소백산 죽령을 오르곤 했었어  

그렇지만 이렇다 할 단서 하나 잡지 못했고 또 그들의 흔적 하나 발견하지 못한 거야 

그래서 혹시,, 희방사역 무쇠달 마을에 가면 그 단서가 있을까? 싶어서 실실 내려와 봤지 

비단왕에게 회방사역은 이번이 처음,,,

아직 단양에서 영주 풍기로 가는 중앙선 기차는 타 보지 않았기에

소백산 죽령고개 희방사역이 신비롭게만 보이는 거야 

 

소백산 죽령 회방사역 - 2020년 11월 21일 촬영

 

역 대합실로 들어가 보니 열차는 하루 두어 대 다니고 있더군 

청량리에서 출발한 열차가 영주, 안동, 경주 등으로 가는 열차였어 

 

소백산 죽령, 희방사역 승강장에서 바라본 중앙고속도로

 

1942년 영업을 개시했다는 소백산 죽령 희방사역 

예전에는 승객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찌 요즘은 기차가 하루 두 차례만 지날까? 

그나마도 이 사진을 촬영한 것이 기차가 다니던 마지막 사진이 될지도 모르겠어 

당시 중앙선 철도 복선화로 인해 곧 폐역이 된다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소백산 죽령, 희방사역 승강장

 

소백산 죽령, 희방사역 대합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이런 산골 역에 다방이 하나 있었어 

무쇠달 다방이라고,,,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 다방이라니? 

그냥 동네 사랑방하면 딱 맞을 거 같구먼 

 

안내판을 보니 역 앞에 있는 마을들은 죄다 무쇠달 자가 들어간 거 있지? 

무쇠달 마을 회관, 무쇠달 마을 식당, 무쇠달 협동조합, 무쇠달 공원, 무쇠달 민박, 무쇠달 다리,,,

오호라!

여기에 가보면 소백산 죽령 산도적들의 흔적을 발견할지 모르겠다! 

장사꾼들이 장사 잘 되는 목을 잘 알고 있듯이 

죽령 산도적들도 사람들이 심심찮게 넘나드는 길목을 잘 알고 있겠지 

그래야 그날 일당도 두둑할 것이고,,,

 

그런데 소백산 죽령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라고? 

충주, 문경에 있는 하늘재(계립령)도 엄청 오래된 고갯길이던데,,,

그렇다면 국내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은 소백산 죽령? 

충주, 문경 하늘재(계립령)? 

요런 게 있으면 궁금해서 그냥 못 지나가지 

그래서 알아봤지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물어보면 그 자리서 척척 대답을 잘도 하더군 

알아본 결과, 

소백산 죽령은 신라 아달라왕 때인 서기 158년에 개통되었다고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기록을 했고 

충주, 문경 하늘재(계립령) 역시 신라 아달라왕 때인 서기 156년에 개통,,,

그렇다면 간발의 차이로 문경 하늘재가 소백산 죽령보다 개통 시기가 2년 더 빠르네 

그렇다면 국내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은 소백산 죽령이 아니라 충주, 문경 계립령이지 

누가 이런 허의 정보를 흘리는 거야? 

말 좀 해보시라우! 소백산 죽령 사람들아! 

뭐라고? 

이런 문제는 재판을 열어 판결을 해봐야 한다고? 

알았쪄! 알았쪄! 

 

그런데 문제가 되는 건 신라가 과연 서기 156년, 당시에

소백산 죽령과 충주, 문경지역의 하늘재(계립령)까지 진출을 했을까? 하는 것이 의문 

동이전의 기록에 의하면 3세기까지는 한반도 남쪽 지역은 마한, 진한, 변한 등이 있었다는데 

그중 신라는 당시 진한에 속해있는 작은 속국이었고 경남 지역과 경북 남부지역 일부만

차지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어쩌면 계립령은 진한(신라)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비슷한 크기의 문경지역 부족들이 먼저 개통을 시키고 

150년 후, 신라가 그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지배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신라 아달라왕 때 개통했다고 썰래발을 친 거 아녀? 

 

뭐라고? 

이런 문제는 국회 청문회를 열어서라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알았쪄! 알았쪄! 

 

소백산 무쇠달 마을인지 대구 달구벌인지 경주 서라벌인지 그 유래가 여기에 있었구먼

신라 선덕여왕 12년(서기 643년) 소백산에서 도를 닦고 있던 두운 스님이

비녀가 목에 걸려 죽을 뻔한 호랑이를 구해줬다?

그래서 호랑이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 어느 날 서라벌 호장 유석의 딸을 스님의 처소 앞에 물어놓았다? 

두운 스님이 크게 노해 호랑이를 꾸짖은 후 그녀를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냈다? 

죽은 줄 알았던 딸을 되찾은 서라벌 호장은 감사의 표시로 스님이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소백산 자락에 암자를 하나 지어줬다? 

그게 바로 희방사라고? 

와~~~ 이 정도면 스토리가 비단왕 뺨치는 스토리네 

끝까지 소백산 죽령 산도적 이야기는 안 하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오늘 비단왕이 여기서 단서를 꼭 찾아 죽령 산도적 이야기 좀 해야겠어 

 

소백산 무쇠달 마을인지, 대구 달구벌인지, 경주 서라벌인지 하는 마을 

옛날, 옛날 하고도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 곰방대 물고 다니던 머언 옛날 

소백산 죽령에는 산도적 소굴들이 득시글 했다고 하는 거 있지? 

당시 도적들 잡는 가까운 포도청이 어디에 있었을까? 

단양? 풍기? 

단양은 영춘에 현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군졸들이 얼마 되지 않아

소백산 죽령의 도적들을 소탕하기엔 역부족이었고 

풍기에도 관아가 있었다고 하지만 단양 영춘 현감이 거느리고 있는 군졸보다 더 변변치 않은 데다 

그 숫자 또한 몇 되지 않아 죽령의 도적들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지 

그러니까 소백산 죽령에 진을 치고 있던 산도적들만 신난 거지 

백주 대낮에도 곡갱이와 도끼 하나만 들고 있으면

지나가는 등짐 봇짐 장수들 주머니를 모두 털 수 있었으니까,,,

단양이나 풍기로 가서 신고해봐야 말짱 허탕인거지 

그 몇 안 되는 군졸들이 이 어마무시한 소백산 죽령을 수색한다는 일이 어디 가능하기나 하겠어? 

 

침묵속에 휩싸인 소백산 죽령 희방사역

 

소백산 죽령 희방사역 승강장

 

폐역을 앞두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소백산 죽령 희방사역 승강장 - 2020년 11월 21일 촬영